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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건축, 그리고 전원생활

210429 내 한옥집에서 무슨 이야기를 만들까

Hi Yeon 2021. 4. 30. 13:29

 

210429 내 한옥집에서 무슨 이야기를 만들까

 

우리나라 관광을 나서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다가오지만 조금씩 지루해진다. 처음에는 그렇게 많은 산, 산, 산들이 신기하지만 자꾸 접하면 그 모양이 그 모양이고 그 느낌이 그 느낌이다. 한국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보는 전경도 그렇다. 아무리 아름다운 낙엽과 단풍도 보고 보면 그 모양과 그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산속에는 으레 사찰이 있다. 처음에는 고적함과 아늑함, 그리고 아름다움에 놀라 눈빛이 반짝하지만, 가는 절마다 그 모양이 비슷하기에 시간이 지나면 똑 같은 한옥과 비슷한 주변 산세에 지루함을 느낀다. 마치 “앙코르 와트”에서 돌, 돌, 돌을 보고 또 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보이는 건물과 주변 모양은 비슷하다. 여름철에 바닷가를 가보면 동해안의 해변가가 그렇고 서해안 해변가가 그렇다. 물론 동해와 서해의 풍광이 많이 차이가 나지만 동해안을 타고 드라이브를 해보면 풍광이 다 비슷하고 서해안은 서해안 나름대로 비슷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똑 같고 사는 집 모양도 별반 차이가 없으니 더욱 그렇다.

가끔 지인들과 한국에서 관광해 보면 그분들은 그런 지루함을 쉬이 느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살았던 적이 좀 있었다면 추억을 더듬기에는 알맞지만 반대로 추억과 관계가 없는 풍광을 보고 또 보고 하면 비슷한 느낌에 지루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경주에 와보면 쉬이 보이는 것이 고분이다. 수백기가 넘는 고분들이 경주 시내 주변에 분포되어 있다. 고분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면 그것은 그저 분묘일 뿐이다. 내가 보아도 볼 때마다 별 느낌이 없다. 하물며 외지인이 보고 또 보면 어떨까? 한마디로 지루함일 것이다. 물론 이런 조용하고 아늑한 곳을 데이트 장소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면 뜻깊은 곳이 되지만 고분 자체만을 보고 이야기 하면 그냥 고분일 뿐이다. 나의 경우 너무 흔하고 너무 흔히 보았던 광경이기에 경주에 그렇게 고분이 많은가, 있는 지 없는 지 조차 혼돈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풍광이 단조롭고 지루하다 하더라도 그곳에 이야기가 있다면 달라진다. 매우 흥미로워지는 것이다. 더구나 그곳의 이야기와 함께 체험이라는 것이 더해진다면 아마도 누구에게라도 흥미와 재미라는 것이 폭발할 것 같다. 모두가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고 다시 찾고픈 곳이 될 것이다.

 

 

오늘 동네에서 선배를 만났다. 문득 고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수백기가 넘는 많은 고분 중에 주인인 알려진 것들은 ‘무슨 왕릉’, 혹은 ‘무슨 릉’ 이라 부르고, 그렇지 않는 것은 그냥 고분이라 부른다. 고분 중에서 발굴을 하여 주인을 알 수 없으면 ‘무슨 총’이라 부르고, 주인을 알면 ‘누구 릉’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그렇구나. 고분에도 그 속에 이야기가 없으면 이름마저 달라지는 것이다.

 

그 예로 무열왕릉이 처음에는 고분이었으나 발굴을 해보니 그 주인을 알 수가 있어 릉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고분이었으나 발굴을 해보니 천마도가 나왔고 금관이 나왔다. 그래서 천마총이나 금관총으로 불려지는 이유이다. 발굴을 해보았으나 그 주인을 알 수가 없었고 그래서 고분에서 나온 대표적인 유물의 이름을 따와서 천마총, 혹은 금관총이라 했다는 것이다. 즉 천마총의 존재 이유는 바로 천마도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니 내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리 문화와 전적으로 다른 멀리서 온 관광객들이 이보다 더 발전된 스토리를 접하면 내 경우보다 더 크게 호기심이 발동할 것 같다. 아직도 경주에서는 발굴은 진행형이다. 외형을 가꾸고 옛것을 보존하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세계인에게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려 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Story)가 필요하다.

 

한옥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탁월한 아름다움을 열거해 보면, 자연지세와 순응되는 크기와 배치, 독특한 지붕 모양과 그 곡선미, 공포의 아름다움, 기단과 그 위의 아름다운 형태미의 목조건물, 그리고 그 아늑함과 고요함,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실용면에서는 낙제점이다.

 

건축물은 살며 일을 하는 삶의 공간이다. 삶의 그릇인 셈이다. 담지 못하는 그릇은 필요가 없다. 실용성이 없고 아름답기만 하면 기념물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건축물은 보편적인 생활 문화가 되지 못한다. 언젠가 없어지는 삶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는 모양만 남는 빈 껍대기가 된다.

 

사실 그런 한옥의 아름다움이 우리 역사 5000년 동안 변동없이 지속되었다. 물론 그 오랜동안 조금 발전되어 왔지만, 그 변화는 건축가가 아니면 똑 같은 모양으로 보일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다. 서양의 건축물은 문명의 충돌, 서로 주고 받음, 자기 발전, 등으로 통하여 자기 주체적으로 건축이 형태적 사상적으로 변천해 왔는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거의 변한 것이 없다. 그냥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옥과 불교문화인 것이다. 형태론적으로 보면 매우 비슷한 한옥이고 사상적으로 보면 또한 비슷한 불교 혹은 유교이다. 자기가 보면 위대한 것일 수 있지만 타인이 보면 낙제점일 수 있다. 내가 보아도 그 긴 세월동안 계속 변화없이 단순 간단했다.

 

일 년전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경주 불국사 근처 주택가에 작은 땅을 마련했다. 그곳에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마음을 먹고는 내 건축가 기질과 총명을 그곳에 다 부어 보았다. 건축은 3대 요소가 있다. 기능성, 경제성, 그리고 아름다움이다. 순서대로 중요하다. 즉 건축은 기능이 좋아야 하고, 건축비가 저렴해야 하며,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처음에는 철골 혹은 목조의 직사각형을 생각했다. 기능과 경제성만을 생각한 것이다. 노년에 편하고 값이 저렴한 노인주택을 원했던 것이다. 주변을 둘려보니 한옥이 많았다. 갑자기 한옥에 관심이 갔다. 평소 나도 한옥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었고 탐했다. 그러나 그 기능성과 경제성으로 보면 낙제점이었기에 고민이 되었다. 마치 총각이 우아한 아가씨의 얼굴과 자태만을 보고 탐하는 경우와 같기 때문이었다. 얼굴과 자태가 이쁘면 낮과 밤일 등 모든 일을 잘 할 것이고, 인성도 자애로우리라. 그리고 작은 돈을 벌어 주어도 불평없이 나를 사랑하리라 생각되는 것과 같다. 사실은 미는 기능과 반비례 하는데 말이다.

 

여러 방면으로 현지에서 조사를 했다. 다행이 요즈음은 목조한옥도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으로 공장생산이 되어 한옥 건축비가 많이 저렴해졌다. 기능성, 경제성, 아름다움 중 경제성 문제가 해결이 되자 내 집을 한옥으로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옥의 아름다움에는 이미 내가 반했고 기능성 문제는 건축가인 내가 스스로 해결하면 되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내 건축가 능력을 1년간 퍼부었다. 하나의 주택을 위하여 수 없이 평면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이고 짓고 또 짓고… 흰 종이에 그림으로 짓고 지우고 또 짓고… 아름다운 한옥 모습에 아늑하고 특별한 정원과 사적공간, 아파트 이상의 편의성과 기능성, 그리고 경제성을 부어넣는 작업을… 최종적으로 내 주택이면서 작업공간, 그리고 사람들과의 브런치공간으로도…

 

지금 18평의 작은 한옥주택이 건축도면으로 탄생했다. 장래 마음이 변해서 어떻게 변경되고 발전될지 모르지만… 결국 내가 계획한 한옥이 3가지의 건축적 요건에 만족된다 하더라도 한가지가 더 남아있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할 지,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만들지이다.

 

그냥 여기서 편히 놀면서 삶을 이어 간다면 무료할 것이다. 삶에서 호기심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한옥이더라도 가치가 없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까? 무슨 이야기를 만들까? 그래, 이곳에서 나의 삶과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머리와 마음으로 만드는 ‘무엇’과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