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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스케치

나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고 싶다

Hi Yeon 2016. 12. 18. 14:44

 

                                      가수 알리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열창하고 있다

 

 

저녁이면 유튜브를 통하여 노래를 듣는다. 이것저것 골라 듣다 보면 가끔 마음이 당기는 가수를 발견하곤 한다. 그중 한 가수가 알리(ALi. 84년생, 본명 조용진, 2009년 데뷔)이다. 그녀는 가창력이 뛰어난 고음의 가수이다. 약간의 서정의 느낌과 함께 힘도 있다.

 

알리는 TV '복면가왕' 프로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팝콘 소녀'라는 이름으로 가왕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미 그녀는 그 이전 TV '불후의 명곡' 프로에서 많이 알려졌다. 외모 위주의 가수가 유행하는 요즈음 오직 가창력만으로 대중을 감동시키는 가수이다. 그녀가 부른 노래 중 유독 '킬리만자로의 표범'(양인자 김희갑 부부 작사 작곡, 84년 조용필 노래, 앨범 8집)이 내 귀를 매혹시킨다.

 

1978년 대학 2년 나는 장학금의 반을 뚝 잘라서 댄스교습소에 등록하였다. 그 시절 젊은이에게는 통기타나 고고 디스코가 유행했었다. 매일 최루탄 연기를 마셔야 하는 시절이기도 하였다. 이것들과는 초연하게 나는 인생의 참의미를 찾기 위하여 낭만, 대모, 공부, 밥 대신에 술, 그놈의 술만 퍼마시고 다녔다. 

 

어느 날 술 취한 눈으로 삼선교 대로변 거리를 어스렁 거리다 우연히 댄스교습소 간판을 보게 되었다. 그래, 세상을 한번 돌려보자 하고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보니 그곳은 이상한 신세계였다. 벽면이 거울로 된 넓은 홀에서 여러 쌍이 노래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며 큰 원을 그리고 있었다. 반주가 끝나자 나는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카운트로 다가갔다.

 

70년대 대학가에서는 막걸리, 당구, 낭만, 통기타, 대모 같은 것들은 그를 듯해도 정통 댄스는 아니었다. 이상하고 야릇한 시선에 나는 무척이나 수줍어했다. 그들도 처음 접해보는 손님이었다. 만 20살도 아니 된 허럼하고 앳된 촌놈에게는 이상한 눈초리는 당연하였다. 마침 주머니에는 술을 마시고 남은 장학금이 있었다. 술김에 돈을 확 질렸다. 돈을 내는 데야 어쩌라... 아리따운 아가씨 선생이 지금부터 하자고 하며 손을 내밀었다. 뭐, 탱고 박자가 사람을 구분하는가. 바로 촌닭과 아가씨가 한쌍이 되어 버렸다. 

 

다음 달, 돈이 없어 딱 두 달을 배운 바람에 그때 그 느낌만 지금까지 간직할 뿐이다. 38년 전, 그때 배운 부르스, 탱고, 지르박, 왈츠의 느낌을 지금도 쉬이 잊어지지를 않는다. 오늘 가수 '알리'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탱고의 가락으로 변신시켜 내 바닥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가사의 뉘앙스와 '탱고 가락은 기쁨과 애수를 브랜딩 하면서 묘한 느낌을 뽑아냈다. 듣자마자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때 댄스교습소에서 춤추었던 촌놈이 이제 스케치하는 촌놈이 된다. 볼륨을 올리고는 나는 마치 내가 부르듯, 내가 탱고를 치듯, 세상을 잊은 채  반주에 맞추어 볼펜으로 노래를 스케치한다.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아 나는 진정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고 싶다.'라고.

 

 

                                                    노래 부르는 가면 알리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