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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스케치

포옹의 기억

Hi Yeon 2016. 12. 19. 13:56

 

 


상상만 해도 흐뭇해지는 언어가 있다. '안다', '포옹하다'이다.  포옹을 하면 푸근하다, 아늑하다, 좋다 라는 느낌이 든다. 아무 생각이 안 나고 그냥 가슴이 가득해진다. 이렇듯 안음이라는 포옹은 특별한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많이 포옹을 했었다. 애기가 조금씩 크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조금씩 포옹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체면 때문에 쉽게 몸으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바쁜 생활로 생략되기도 한다. 과거 우리의 생활은 대부분 궁핍하였다. 현실이 어렵다 보면 포옹의 경험이 적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포옹이 우리에게 드문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관습에 많이 기인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유교의 예법으로 쉬이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고 감정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남녀 사이와 사회 공동체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가족끼리조차 안음, 포옹, 스킨십은 어릴 때부터 억제되었다. 스스로 몸짓과 감정을 억제하고 말로 근사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미덕으로 알고 살았고, 말도 적게 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즉 울고 싶어도 못 울었고, 웃고 싶어도 못 웃었으며, 안고 싶어도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남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울면 안 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오랫동안 유교라는 예법이 우리의 감정과 몸을 경직화시겼고 그래서 자유 복지사회인 오늘까지도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살기 좋아졌고 자유롭고 풍요로워졌다. 새로운 세대들은 이런 환경에서 자랐다. 이런 자유와 풍요 속의 애들은 당연히 원초적 본능으로 자란다. 감정대로 표현하고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기성세대로부터 감정 표현을 자연히 배워지고 관습화 된다. 감정이 억제되는 사회에서 어린 유기체는 스스로 포장을 하기 때문이다. 

 

감정 표현은 분위기와 습관에 좌우된다. 하자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가르쳐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울고 쉽게 웃지 못한다. 더구나 상대를 안아야 하는 포옹은 더 어렵다.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몰래 혼자 할 수가 있지만 포옹은 몰래 혼자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화 핵가족화되고 복잡해지는 오늘날, 혼자 걸어가야 할 일이 많아진다. 울 일은 더 많아지는데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포옹은 체면과 관습으로 생략된다. 사실 포옹은 행복 사회의 기초가 된다. 슬프거나 기쁠 때 울고 웃는 것은 아픔을 치유하고 기쁨을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때 포옹하면 아픔과 기쁨이 승화되는 효과까지 생긴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따뜻하게 연결하는 가장 좋은 몸짓이며 삶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내가 캐나다로 이민을 하여 그곳 작은 도시에서 살 때였다. 가장 먼저 겪는 문제가 포옹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도 나를 안아주었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그러했고, 내가 어려울 때 도워주면서, 챙겨주면서, 격려하면서  포옹하며 안아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금세 그들이 나의 가깝고 따뜻한 벗이 됨을 느꼈다. 그리고 푸근해졌다. 그다음 나도 상대를 안고 그 따뜻함과 친근함을 전했다. 나라는 사람은 매우 뻣뻣하고 감정표현에 매우 인색한 놈이다. 그 후로 나는 많이 변했다. 심지어 안음과 같은 포옹이 있을 때는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나 가방을 그냥 바닥에 내 던져버리고 포옹부터 하게 되었다. 물건이 뭐 대순가? 하면서. 특히 가족을 대할 때는 포옹부터 먼저 해야지 하면서 나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민 중 한국을 방문할 때였다. 오래 보지 못한 24살인 내 질녀를 시내 도로 사이로 두고 보게 되었다. 서로 다가갔는데 횡단보도 끝에서 마주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깊게 안고 포옹했다. 일을 끝내고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뒤가 좀 따가움을 느꼈다. 그때는 내가 캐나다 물을 좀 먹어서 '뭐 별일인가, 어때.' 하고 말았다.

 

이제 고국에 들어와 산지 1년이 넘는다. 사람도 분위기에 따라 변하는가 보다. 나는 이민전 그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 뻣뻣한 나 자신으로.  내가 먼저 나서는 성격이 아니어서 더  그렇다. 한편으로는 그런 포옹에 신경 쓸 일 없으니 편하기도 하다. 포옹이라는 것은 우리의 습관이 아니니까. 꼭 필요할 때만 하면 되니까. 그렇지만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습관은 아직 조금 남아있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포옹할 그런 눈치가 있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덤벼야 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딸과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