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2015 겨울 고국으로 돌아와서

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

Hi Yeon 2016. 5. 25. 21:36

5월 말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최상의 기후이다. 화창하고 따뜻한 봄날에 특별히 꼭 해야 할 일도 없다. 누가 나더러 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딱히 가야 할 곳도 없다. 셀폰은 하루에 한번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루 종일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오후가 되면 운동장에 나가 달리기와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오후가 지나 갈 무렵  집으로 돌아와 입맛따라 저녁을 먹는다. 어둠이 몰려오면  TV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본다. 이렇게 내 하루가 간다.

 

이전의 캐나다 생활과는 영 딴판이다. 물론 할려고 하면 할 일도 많겠지만 지금까지는 몰라 하고 그냥 그렇게 지낸다. 이렇게 살아보니 몸과 마음은 편안하다. 하지만 이렇게 몇 달이 지나가자 최근에는 내가 사는 지 아니면 살아지고 있는 지 의문이 생길 때가 종종 있다. 이제까지 주어진 공간에서 내 의지를 최대한 펼치고 살아왔었다. 무엇을 하든지 시공을 잊어버리고 몰입하였다. 그리고 항상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 답을 얻고자 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내 의지가 항상 나를 제어했던 것이다.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쌓아 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푹 퍼져 자빠진 죽과 같다. 하는 것 없이 시간은 간다.  바람이 부는 대로 그냥 그렇게 흘려간다. 흐르는 구름과 같다. 뭐? 이것이 행복 아니던가 하면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꿈을 꾸지 않는 행복은 삶의 의미가 없어진다. 타의만 있고 자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흘려 보내면 그나마 과거에 좀 채웠던 내 인생의 곡간이 비어 버릴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라는 것은 애당초 의미없는 존재가 되어 버릴 것이다. 나는 없고 주변만 있는 시간이면, 혹은 쌓는 오늘이 아닌 흘려 가 버리는 과거가 된다면,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내 남은 인생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58년을 살았으니 살아 왔던 시간을 날로 치면 22,000일이다. 남자 평균 수명을 80세로 보면 내가 앞으로 살 수 있는 햇수는 22년이고 날은 약 8,000일이 된다. 잠자는 시간으로 하루 8시간을 제하면 8,000일은 약 5,400일로 확 줄어든다. 사람은 늙으면 몸과 마음이 부자연스럽게 된다. 이것도 내 남은 시간을 까먹는 주요인이 된다. 혹은 어쩔 수 없이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본의 아니게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하여 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저런 이유로 5,400일의 절반을 뚝 잘라버리면 내 의지대로 살 날은 겨우 2,700일 정도가 남는다.  정말로 이것은 너무 짧은 세월이다.

 

10년전 이민하자마자 사업에 손을 대었지만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애들을 키우면서 파트타임 일을 하였다. 남는 시간이 아까워 대학에 나가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금속으로 무엇인가 만들었다. 저녁이 되면 글을 쓰고 스케치 하였다. 내 눈에 들어 오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그대로 흘려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나는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물론 캐나다의 작은 도시의 한정된 공간속이었지만 몸과 마음을 항상 긴장시키면서 네 앞에 다가오는 혼돈되고 낮설은 세상을 뚫고 부단히 내 삶의 창고에 무엇인가를 조금씩 쌓았다. 이제, 따지고 보니 나의 이민 10년동안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다.

 

고국에 돌아와 놀 만큼 놀았고 정신없이 대충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단지 2,700날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섬득해졌다. 그후 자주 심각해지더니 곰곰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렇게...

 

"내 의지대로 또 한번 더 살아가는 것도 차라리 좋다. 내일도 더 이상 보고 느낄 수 없는 오늘이 그냥 가 버린다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남은 시간을 전적으로 내 의대로 산다고 하여도 겨우 2,700일 뿐이다. 그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자. 또 하나의 꿈을 만들어야겠지. 이룰 수 없는 꿈이라 하더라도 좋다. 공짜로 꿈을 꿀 수는 있지만 세상에는 꿈 만들기에는 공짜는 없는 데? 그래도 하루하루 내 곡간을 꿈 만들기로 조금씩 채운다면 존재의 의미가 되리라. 공짜로 내일을 열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주었졌다면 그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없다면 없는 대로 열면 되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남아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 똑 같다. 똑 같은 시간이지만 하기 나름이고 느끼기 나름이다.

 

타국이 아닌 고국에서 사니 별 어려움도 없다. 이국에서 한번 살아 보았으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과 꿈을 꾼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시간은 너무나 작고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냥 흘려 버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무엇과 바꿀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매일매일 오직 사랑하는 데만 사용하여도 겨우 2,700날이다. 불평할 시간도 미워할 시간도 없다. 그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자. 오늘을 꿈을 위한 첫날이라고 생각하자. 그래서 오늘 나는 일어나자마자 결정한다.

 

"그래, 하자."

 

나는 계획했던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이라기보다 작은 가게이다. 그럴 듯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나 면허가 나에게 있다. 그러나 그런 사업은 이미 접었다. 법을 따져야 하고, 공공성을 부여하여야 하며, 품위도 지켜야 한다. 텃새도 무척 세다. 무엇보다도 비정상이 정상으로 굴려가는 것에 환멸을 느낀지 오래 됐다. 원칙을 지키다 보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오히려 그런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는 단순한 사업이 좋다. 골치까지 안 아프면 더 좋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가게이지만 자존심에 상처가 되는 일도 없고 양심과 대립될 일도 없다. 대충 옷 입고 대충 하면 된다. 몸이 힘들면 좀 덜 벌면 된다. 그러면 나는 내 의지대로 살 수가 있다. 생각하고 느끼고 내 인생에 물음표에 대답을 할 시간이 많게 된다는 것이다.

 

고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우선 편하다.  그것은 내 나라에서 우리말을 쓰고 우리 관습대로 사업한다는 것이다. 물어 볼 때도 많고 이야기 할 상대도 많다. 사업하면서 외로워 할 필요도 없다. 만나는 사람이 다  정겹고 좋다. 어려우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나이에 고국에서 그것도 혼자 사업을 하게 되면 힘이 들고 시간에 많이 쫒기지 않을까? 혹이여 잘못되면 말년에 신세 망치지 않을까? 살아 갈 날로 2,700일은 너무 짧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만 심만 버리면 하는 것이 마냥 놀면서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 보다 낫다.  내가 10년전 이민을 결정할 때도 그랬다. 이대로 대충 사는가? 하고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때보다 지금 나는 많이 철이 들었고 형편도 많이 나아졌다. 그때는 흙바람부는 황야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가게을 많은 수수료를 주고 인수받아 했었는 데는 지금은 고국에서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믿을 만한 가게을 직접 인수받아 하는 것이다. 

 

여유를 갖고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하면 된다. 또한 나만 챙기면 되는 것이다. 좀 더 바쁘게 살 뿐이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업을 핑게삼아 뜸뜸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가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여행도 쉽게 다닐 수가 있다. 애들을 포함하여 누군가를 경제적으로 도울 수도 있다. 더 크게는 캐나다 대학에서 다시 공부도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이는 내 노후을 만들어가는 또 다른 꿈이다. 그 꿈은 생의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다. 스스로 기대해 본다.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