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게를 넘기기로 한 주인이 서울 유흥가를 둘려 보자고 하였다. 그는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지방의 상가 밀집지역에 여러 가게들을 소유하거나 관리하고 있다. 자기 가게의 위치와 규모를 직접 보여주고 현재 그 가게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와 그리고 요즈음 젊은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놀고 술을 마시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차후 가게 운영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홍보를 겸한 배려였던 것이다.
7080년도 서울의 유흥가라면 나는 신촌과 명륜동(대학로)정도 알고 있다. 그때 소주와 막걸리집 그리고 분위기가 있는 라이브 카페나 양식집이 생각이 난다. 그중 김치에 깡소주를 들이켰던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아련한 추억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서 혹은 건축가로 살아 온 내 경험으로서 이런 유흥업소 '가게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누가 이런 곳에 와서 즐기는지?' 와 같은 의문보다는 그 참 순진하게도 나는 그저 신기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밤 10시, 가게 주인의 차에 동승하여 함께 신촌, 홍대, 신천, 천호, 그리고 건대를 갔다. 이곳들은 밤새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곳으로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서울의 대표적인 유흥가이다. 넓지 않는 도로 사이로 술집, 음식점, 카페들이 빽빽이 있었고 도로를 따라 길게 줄지어 영업중이었다. 그 길이가 100m를 넘으며, 불 밝은 도로는 넘쳐 십자로 갈라지기도 하였다. 거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댔고, 가게는 젊은이들이 끼리끼리 혹은 쌍쌍이 머리를 맞대고 마시고 재잘댔다.
5월말 밤, 낮의 따갑고 더운 기운은 가시고 밤기운으로 다소 선선하였다. 대부분의 가게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오픈형이었다. 유흥가를 덮은 검은 하늘은 쇼핑센타의 거대한 지붕이라고 하면 환한 거리는 광대한 Mall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거리의 조명은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밝아지면서 아침이 열리기 시작했다.
농촌 장학금이 대세였던 그 시절에는 공부와 낭만과 저항주의가 뒤섞인 소주와 막걸리 문화였다. 술마시고 흐느적거리는 것은 남성의 권위와 고뇌였다. 지금은 부모에 기대어 치장하고 먹고 마시며 쾌락을 즐기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젊은이들의 세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여자들이 먼저 나서서 소맥을 권하고 마신다. 술마시고 허우적거리는 것은 여성의 선택이 되었다. 거리마다 상가마다 얇고 가는 목소리가 거리를 채우고 넘쳐 내 귀에 앙앙거린다.
에이, 설마 젊은 사람들이 밤새도록 술마시고 돌아다니겠어?
사장님, 공부만 하고 외국에 살다보니 완전히 외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 보니 많구만, 그리고 젊은 여자들 판이네.
그랬다. 혹 이런 곳에 다녀 볼 기회가 오래 전에 나에게도 여러 번 있었다. 또한 일부러 젊은이들이 다니는 술집에서 술을 먹어 보기도 하였다. 그때는 늦게 마셔 봐야 자정 전이었다. 내가 귀가할 때면 다른 사람들도 집으로 들어가리라. 사람들이 사라지면 자연히 거리는 어둠으로 묻히리라 여겼다. 그때도 그랬는가? 지금 여기는 불빛과 속삭임으로 가득하였다. 조금 기다리니 그대로 아침이 열렸다. 궁금해졌다. 내가 외계인인가? 아니면 내가 노인인가?
여러 가게 주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페. 음식점, 술집, 노래방... ... 다들 한결 같았다. 요즈음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언제는 좋은 적이 있었나, 항상 어렵게 왔지.
맞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특히 심합니다.
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항상 인생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그런가? 말은 그렇다 하더라도 얼굴에는 그러한 힘든 빛은 없다. 목소리와 얼굴은 쾌활했다. 잘될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다. 망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불평하면서 따질 오늘이 아니다. 하부구조에서의 인생은 오늘을 위해서 많이 산다.
걸어가다가 한 노래방에 들어갔다. 주인장은 40대 정도 보였다.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서로 직장의 동료 같은 관계이다. 어떠세요? 하자, '먹고 살만하다'고 답했다. 그들이 말하는 '먹고 살만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벌이인지는 나는 잘 모른다. 경쟁 속에서 내 돈 투입하여 밤과 낮을 바꾸어 밤새도록 일하고는 얼마를 벌어야 적정한 것인지, 그들의 사고와 살아가는 방식을 모르는 나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대화 도중, 노래방의 도우미인 아가씨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핵심을 물었다.
노래방에서 도우미 아가씨들, 요새는 구하기 쉬워요?
어렵지는 않아요. 주말에는 그들도 쉬어야 하니 주중에 많이 나와요. 손님들도 주중에 많아요. 술도 주중에 많이 먹고, 사람들은 주말에는 쉬어야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새파란 젊은 사람들도 아가씨를 불려요?
그럼요.
노래방 주인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 당연하다니, 그것도 새파란 젊은이들이. 그러고 보면 문화는 사람따라 간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 세대와 우리 앞세대가 만든 문화가 지금은 더 젊은 세대로까지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세상에 부모덕으로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그런 것까지 그렇게 다 챙기고 몰래 해소하는 것이다.
동이 틀 무렵 우리는 술집으로 향했다. 나는 눈꺼풀이 무거워 어찔어찔했지만 가게 주인들은 이제 퇴근 후 한잔 술이다. 반면 나는 새벽에 일어나 소주를 마시는 격이 된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함을 느꼈다. 누구보다 바닥인생을 많이 겪어보고 또한 바닥에서 영세업을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많이 보아 왔었다. 인생 최전선에서 먹고 사는 가게 주인들과 종업원은 세상이 흘려가는 물결에 따라 살고 그리고 그런 물결을 잘 타고 넘어간다.
국가라는 농장에 나무를 심고 그 과일을 따먹은 사람들이 돈을 흘리면 그 돈을 받아 사는 사람들이 중산층이다. 여기 유흥가는 이런 중산층, 중상류의 자식들, 그리고 그 이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규정대로 허가 받아서 술을 서빙하며 음식과 차를 팔고, 혹은 돈받고 잘자리를 마련해주거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는 데 무슨 작은 도덕적인 문제라도 생기나?. 그것은 생활이다.
설령 양심에 문제 될 일이 있어도 그들에게는 느낄 여유조차 없다. 있다면 어찌보면 양심은 아주 사소하고 작고 보잘것 없다. 손님 본인들의 문제이고 가치관의 문제인 것이다. 술마시는 것과 술마시고 나가서 하는 일까지 선생 역활을 할 수는 없다. 그들 자신과 그들 가족의 문제인 것이고 크게는 국가 가치관의 문제이다.
모든 것을 만들고 조종하는 중상부 구조에서 느껴야 할 문제이다. 나무를 심고 그 과일을 다 따먹는 사람은 중상부구조에 속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상부구조는 국가 운영이다. 운영은 상부로 올라갈수록 과실이 커진 만큼 양심 문제도 눈덩이처럼 커진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투명해야 하고 도덕적 문제를 짊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그럴 바에야 단순하고 생각이 필요없는 이러한 하부구조에서 경제 생활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편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할려고 하는 가게는 이런 것과 관계없으니 말이다.
아침에 거리 술집에서 한잔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술먹으면 그냥 취하고 즐기면 되는 것인데, 좀 배웠다고, 좀 안다고 술김에 세상을 평하게 된다. 가게를 시작도 하기 전에 말이다. 당장 닥치는 나의 일이어서 그런가? 그냥 술이나 먹지. 아침에 사람들과 어울려 먹는 소주맛은 참으로 짜릿하다. 세상과 불평,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가게를 시작하여 입에 풀칠이라도 쉽게 할 수가 있다면 되질 않는가?
실천없는 좌우명이라 하더라도 그에 맞는 일을 할 때에 필요하다. 공공의 일을 다루는 사람들과 상류층들이다. 내 가게에는 작은 좌우명이라도 필요없을 것 같다. 나는 가게 사장이고 동시에 종업원이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볼 일도 없다. 손님에게 서빙만 잘하면 된다. 먹고 살기 위해서 공공성을 판단할 일도 양심을 팔 일도 없다. 대충 입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면 된다. 골치 아픈 일이나 신경쓸 일도 없다. 배웠다고 잘난 척 할 필요도 없다. 무식하고 못난 것이 편하다. 내식으로 돈을 쓰고, 내 맘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살면 된다.
이러면 되는 것 아닌가? 여보게 주인장.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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