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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 결정한 시한부 인생이다

Hi Yeon 2025. 12. 13. 19:48

251213 나는 신이 결정한 시한부 인생이다

 

일본 노인들이 사망하면서 내는 상속세 금액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내용은 이렇다. 가지고 있는 돈은 쓸 만큼보다 더 많다. 그런데 아까워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죽기 전에 자녀에게 증여하지 않는다. 은퇴자, 이렇게 그들은 돈을 쌓아놓고도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다.

 

알뜰살뜰 사는 습성이 몸에 배어서 그렇다. 당연 자신을 위하여 쓰지 못한다. 남을 위해 쓰지도 못한다. 꼭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한다. 그래서 마음껏 써도 다 쓰지 못하는 노인들의 돈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죽을 때 그 돈은 그때 자식에게 돌아간다. 이때 상속세가 부과된다.

 

일본은 우리나라 상속세율보다 높다. 본인을 위해서 쓰지도 않고 쌓아둔 돈이 상속세라는 명목으로 국가에 귀속된다. 그 금액은 어마어마하며 노인복지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점차 늘어난다. 결국 죽어서 아까워 쓰지 못한 그 돈을 나라에 바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노인들이 돈 못 쓰는 그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까? 그래도 적당히 쓰는 스트레스보다 적는 모양이다.

 

나이 들어 수입이 없으면 쌓아 놓은 돈은 당연 조금씩 줄어들면서 죽을 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몸만 떠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는 정말 어려운 모양이다. 늙어도 내일 또 내일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쌓아둔 돈을 까먹고 살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다. 일본인들이 그렇다고 한다. 돈을 벌어 저축하는 태도와 그 돈을 사용하지 않고 꾹 쌓아두면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다.

 

건강을 위하여 마음껏 못 먹는다. 마음은 여전하나 몸이 늙어 그대를 사랑하고 싶어도 못한다. 여행하고 싶어도 체력이 뒤받침 되지 않아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늙으면 다리가 성하지 못해 좋아하는 운동도 못하고 돌아다니기도 어렵다. 늙으면 좋은 집도 좋은 옷도 불편하다. 사실 늙으면 늙을수록 내 돈이라 하더라도 돈이 주는 이득은 점점 감소한다. 늙을수록 인간의 욕정은 다 죽고 식욕과 물욕만 제 구실을 한다. 이렇게 사용처가 줄어드는데 늙을수록 마음이 위축되어 돈이 나를 지켜 주지’, 혹은 어떻게 벌어 모은 돈인데하면서 오히려 돈에 대한 욕망은 더해진다.

 

사실 늙으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쓸수록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고 나를 편하게 만드는 돈을 아까워서 못 쓴다. 그런데 돈이 넉넉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없는 사람이 그때그때 돈도 잘 쓴다. 쓰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불편하고 불안스러운 것이 돈이다. 늙은이에게 쓰지 않고자 하는 돈이 많으면 당연 자식들은 욕심이 쌓이고 상속인 사이 다툼마저 생긴다. 쓰지 않고자 하는 양만큼 그들의 욕심도 당연 더 커진다. 흔히 보이는 우리 사회의 분란이다.

 

늙으면 병원비가 무척이나 많아 드는데하고 항변하기도 한다. 맞다. 나이 들면 병원비가 많이 느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 더 늙어서 병원비로 충당하기 위해서 나이 먹은 지금도 아껴 쓴다. 그것도 정신이 있을 때 말이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면 내 돈은 내 의사대로 쓰이지 않는다. 좋은 예로 그렇게 늙어 병원비가 확 늘어 났다면 쌓아둔 돈이 줄어야 하는데, 지금 상속세금이 계속 느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는 것 같다.

 

내 어머니는 나이 80을 넘겨서도 잘 다니셨다. 평소 허리가 많이 아파 고생을 하였지만 말이다. 가끔 도시로 나와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버스를 이용하는데 어머니가 시골집으로 돌아가실 때는 내가 택시를 타시라고 돈을 드린다. 그럼 어머니는 알았다고 하고는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돌아오신다. 내가 준 그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택시비라고 하지 않으면 안 받으시기 때문이다.

 

20년 전이었으니 그때 어머니는 가진 재산 없이 한 달에 30만 원정도 들어오는 돈으로 생활하셨다. 어쩔 수 없이 아끼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자식에게 손 벌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내가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를 뵈면 읍내 중국집 짬뽕을 시켜주시고 커피 한잔 할래?’ 하면서 다방의 커피도 시켜 주었다. 꼭 쓸 데는 부담 없이 돈을 썼다. 89세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남은 것이라고는 손가락의 금반지 한 개뿐이었다.

 

불치병으로 반 년 혹은 1년 더 이상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시한부 환자들의 수기를 만난다. 그들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 처절히 깨닫는다. 나는 왜 이렇게만 살아 왔던가? 그러나 아직 시간이 있다. 이제라도 내 마지막을 인식하고 오늘만이라도 제대로 살아야 한다. 남은 시간이라도 보람되게 사용하자.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자. 이렇게 그들은 일마저 그만두고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남은 삶을 위하여 가진 돈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한다. 정말 처절한 정도였다.

 

한국인의 현재 평균수명(작년 태어난 애기의 기대수명이니 현재 노인은 이 나이보다 적겠다)84(81, 87)이며 건강수명은 68세다. 즉 죽기 전에 15년 동안 아프거나 앓다가 죽는다. 내 나이는 지금 67세다. 이미 평균으로 따지면 건강수명이 다했다. 잘 먹고, 폼 내고, 사랑하고, 즐기는 나이가 지나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제 병원비가 아니면 돈이 있어도 쓸 데가 없어졌음을 느낀다.

 

그럼 나는 15년 동안 아프거나 앓다가 죽는다. 남자의 기대수명은 81세다. 그럼 15년이 아니라 12년이 된다. 작년에 태어난 애기의 기대수명이니 우리 늙은이는 그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내 친구는 벌써 저승으로 갔으니까 말이다. ‘12년 동안이라는 것은 확률적으로 그렇다. 의사가 환자에게 시한부 인생이라 결정할 때는 의학적 확률을 검토해서 결정한다. 반면 남은 생을 확률적으로 계산해 보면 나는 신이 결정한 시한부 인생이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내 삶을 꾸려나가야 하나? 이때 나는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이라 판정 받은 환자의 처지와 비슷해 보인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는 내 나이에 비해 좀 더 건강하다고 판단한다. 그럼 나는 건강 나이가 좀 더 있으니 좀 더 여유가 있다. 그럼 이때부터라도 알차게 살아야 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기 전에 미리 말이다. 늙어 나도 병이 들 때가 있다. 의학적으로 확실하게 고칠 수 있는 병이라면 쌓아 놓은 돈을 의료비로 지출해서 연명해야겠지. 그러나 늙어서 오는 자연스런 질병이라며 억지로 연명하지 않겠다. 그러게 할 쌓아둔 돈도 나에게는 없다. 그것보다 시한부 인생의 삶과 같이 내일을 알차게 나를 위한 오늘이 되도록 미리 고민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왕 사는 것, 왜 평소에 죽는다는 생각을 자주하고 사는가? 그래, 자주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런 사람은 비관주의자일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70세가 다가온다. 이때 우리는 신이 주신 시한부 인생이라고 여기며 사는 태도가 어쩌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진정 마음으로 느끼며 살지 못하면 부나비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신이 결정한 시한부 인생을 인식하고 자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스스로 미래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럼 남은 삶에서 현명하게 처신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인식하며 살고자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과 다름없이 나도 계속 오늘과 같은 생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는 탈을 쓰고 살아간다. 그런 탈속에는 지혜가 없고 오직 후회와 부질없는 욕망만 있다.

 

몇 년 동안 내 큰누나, 큰형, 작은형이 차례로 돌아가셨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그 생각을 하면 자주 죽음 생각이 든다. 요즈음 특히 더 그렇다. 그때마다 신이 준 기한을 더 꼼꼼히 생각해본다. 가진 돈과 체력을 운명이 준 기한까지 남김없이 잘 쓰자. 오늘만 생각하자. 남아 있는 열정에 돈을 쓰자. 시간을 다하자. 온몸을 다하자. 사랑마저 더하면 좋겠다. 내일은 그때 생각하자고 말이다.

 

사람이 70을 넘기면 반사람 반귀신이라 한다. 그럼 죽기 전 5년은 거의 귀신이 된다. 귀신, 아파 가면서 더 살면 뭐 하노? 내 억지로 수명을 연장할 돈도 없다. 지금 있는 돈, 남은 열정, 지금 있는 사랑마저 모두, 그대가 주신 수명에 딱 맞추어 쓰며 산다. 그럼 나도 남김없이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