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14 종이 값이 얼마나 한다고
과거 오랫동안 건축사로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살았다. 중년이 되어 부동산 공인중개사로도 일을 했다. 즉 나는 땅의 개발이라는 설계 업무와 더불어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공인중개사로 일할 때는 일반 소비자 상담보다 현직 공인중개사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활동하는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은 부동산 권리관계에 대하여는 잘 알고 있으나, 건축 관련법규와 개발 관련법규에 대하여는 규정도 모르고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은 시공 경험이 없다.
살다 보면 친한 사람이 생기게 된다. 밥을 같이 먹고 술을 한잔 한다. 자주 사무소에서 만난다. 시간이 지나면 고객이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가 아마도 한국으로 돌아와서 부동산 사무소를 크게 차린 후였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늘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곤 했다. 경기도 출신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다. 그는 2주에 한 번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뵈려 간다. 어느 날 친구가 동행하기를 원했다. 나는 바람도 쉴 겸 친구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60대 친구는 90대 아버지에게 정말 살갑게 대하였다. 요양원 휴게실에서 깔깔거리면서 아버지와 함께 화투를 치고 장기도 두었다. 요양원에서 아버지에게 무슨 낙이 있겠는가? 친구의 아버님은 정말 행복해하셨다. 그 모습이 너무나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그는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땅에 대하여 말하였다. 친구다. 그래서 관심을 두고 들었다. 그가 말한 그 땅은 만 평이나 되는 임야였으며 도심에 붙어 있었다. “요놈 참 좋은 땅이네!” 하고 나는 감탄했는데 친구는 개발이 안 되는 땅이라 하면서 하잖게 여겼다. 내 눈에는 좋은데......, 지번을 받아 일부러 긴 시간을 내어 친구를 위하여 그 땅에 대하여 조사를 해 주었다.
나무가 우거진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였다. 만 평이면 뭘 해? 개발이 전혀 불가능한 땅이다. 그래도 도심에 붙어 있다. 알 수 있나? 언젠가는 개발제한이 완화될 수도 있다. 요즈음 그린벨트라 하더라도 임업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려 있다. 그래서 평당 10-20만원은 할 거야. 그럼 총 10억의 땅이다. 이것만으로 큰 발견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린벨트 지정선이 땅 전체가 아니라 아랫도리부분 1,000평을 비켜가 있었다. 아하, 요것 봐라? 자세히 따져보니 이 부분은 주거지역이네? 이런 복덩이가? 다시 시간을 내어 현장 답사를 했다. 다행이 그 1,000평 땅이 작은 진입도로와 연결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진입도로를 만들 계책도 알아두었다. 개발이 가능한 주거지역이고 길이 있으면 땅의 가치는 수십 배 올라간다.
돌아와서 친구에게 말했다. 전체 임야에서 주거지역인 1,000평을 분할하면 그것만으로 개발할 수 있다. 현장에 가보니 진입도로 확보도 가능하다. 그럼 1,000평의 땅 가격은 평당 수백만 원 훨씬 넘고 개발하여 대지가 되면 부르는 게 값이다. 그 땅만 20-30억이 되고 붙어 있는 그린벨트 야산 1만평을 더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어 상상이상의 돈이 된다. 만약 1,000평 위에 상업시설을 건축하면 이는 도심에 붙어 있는 1만평의 자연림 속 상업시설이 된다. 이렇게 일부분만 개발하여 큰 현금흐름을 창출하다가 세월이 흐르면 누가 아나? 그린벨트가 해제되기도 한다. 그때는 전체 가격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된다.
1년 후 그는 아버지에게 잘 말씀드려 그 땅을 자신에게 이전등기를 했다고 했다. 내 말을 진심으로 여겼나? 듣고 보니 욕심이 생겼나? 아마 그 친구의 아버지는 별 볼일 없는 그린벨트 땅이니 살갑게 대하는 작은아들 요청에 쉽게 응했으리라. 친구의 아버지도 그 땅 전체가 그린벨트로 알고 있었으리라. 일부분이 주거지역임을 알았더라도 분할개념은 없었으리라.
그는 주거지역 부분만 분할하여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적극적으로 토지형질변경설계와 건축설계를 도와주었다. 토목설계사무소를 소개해주고 건축설계는 내가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시공도 종합적으로 기획 관리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에게는 친형 두 분이 있었는데 큰형과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큰형이 알게 되면 이 땅에 대하여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만은 할 수 없었다. 요양원에 있는 부모로부터 허락받은 불합리한 증여는 큰형이 나중에 소송을 제기하면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청으로부터 개발허가가 났다. 이는 내가 이야기한 사실이 확실하다는 증거였다. 그때부터 그는 내 설계안과 내 개발안을 무시하고 동네 시공업자와 마음이 맞아 자기 마음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수도 없이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에 지반 공사에만 수천만 원이라는 공사비를 들였다. 물론 불법한 방법과 무리한 개발방식이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무척 좋다. 전체 혹은 분할된 1,000평이라도 팔아서 현금을 쥐라”라고 권하였으나 욕심에 찬 그는 내 말을 무시했다. ‘팔아라’ 라고 한 내 말의 진짜 의미를 그는 몰랐던 것이다. 말을 했더라도 욕심으로 가득 찬 그의 마음에 내 충고가 들어갈 여유가 없었다.
볼품없는 땅이 수십억이 될 수 있다는 정보와 계획과 그리고 실제 그 실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찾아주는 것은 경험이 많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 전문가는 경험이 있기에 쉽게 실행도 할 수 있다. 전문 개발업자가 돈을 들여 하는 사업이 이런 종류이다.
친구는 100억이 생기면 10억을 떼어 주어도 90억의 이득이다. 계약 없이 그렇게 할 사람이 실제 없다만 돈이 아니라도 나를 믿어주는 의리만으로도 나는 족했다. 그런데 친구는 이런 나의 노력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래 할 수 없지 뭐. 나는 그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그와 만나지도 않았다.
몇 년 후 들려오는 소식에 나는 좀 놀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큰형이 소송을 걸어 그 땅 전체에 개발과 매매가 불가능하도록 법적 조치를 했다고 하였다. 큰형을 찾아가 이제라도 서로 나누자고 하여도 대화가 불가능하다. 형의 소송에 대응하느라 이제까지 들인 변호사비만 수천만 원이다. 기반시설 공사비와 변호사비로 1억 이상의 현금이 이 땅에 쏟아 부었다. 그런데 이제 권리 행사를 전혀 할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차라리 땅이 애초에 없었으면 그 돈이라도 쓰지 않았을 걸.
변호사야 된다고 하지. 그래야 의뢰인이 작은 희망이라도 갖고 의뢰하지. 그 당시에는 땅 가격이 마구 오르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이다. 헐값이 아니면 누구도 처다 보지 않는다. 이미 그 땅에 많은 돈이 투입되었다. 이제 형제의 다툼으로 권리 행사를 전혀 할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현장은 공사하다 말고 어지럽게 방치되어 있다. 다투는 형제들의 나이는 70세보다 적거나 많다. 욕심 때문에 사람 잃고, 돈 잃고, 이제는 세월마저 잃어 건강이 말이 아니다.
전문적인 Soft는 돈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이 진심이면 더 그렇다. 아직 중국이나 베트남에는 카피 상품이 넘쳐난다. Soft에 가치를 두는 나라가 아니다. 무시해도 되는 나라이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에서 대중가요를 마음껏 사용했다. 요즈음 저작권료를 내어야 노래 사용이 가능하다. IT업계에서는 정보를 중국에 팔아넘기다가 감옥소에 가는 사람도 많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돈 받고 오직 컨설턴트만을 제공해주는 업은 성숙되어 있지 않다.
가끔 과거 공사업자의 요구가 생각난다. 며칠 끙끙대야 기본 설계안을 만들 수 있다. 그 당시에는 기본설계를 단골에게는 무료로 제공했다. 당연 업자가 이 기본 설계안을 참고하여 나에게 본 설계를 의뢰하리라 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떤 업자는 여러 설계사무소를 돌면서 갑질을 한다. “그것 복사 좀 해 줘. 종이 값이 얼마나 한다고?” 그때 그분과 다투기 싫어 흔쾌히 복사해주곤 했다.
'하루를 보내는 나의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1225 오늘 X-Mas다 (1) | 2025.12.25 |
|---|---|
| 피클볼 송년대회(2025) (1) | 2025.12.22 |
| 나는 신이 결정한 시한부 인생이다 (1) | 2025.12.13 |
| 251210 1/N로 나눔은 성숙되지 못한 사회 (1) | 2025.12.10 |
| 251209 과일은 죄가 없다 (0) | 2025.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