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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7 난 그대를 사랑하다가 죽을래

Hi Yeon 2025. 12. 9. 15:51

 

251207 난 그대를 사랑하다가 죽을래

 

Architect와 Creator는 ‘창조자’라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Architect는 건물을 짓기 위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자’로서 시스템 측면이 크다. 요즈음 건물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도 사용된다. IT Architect가 그 한 예이다. 반면 Creator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드는 자’로 표현된다. 한 예로 온라인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크리에이터’라 칭한다. 보통 광범위한 창작 주체를 일컫는다.

 

‘하느님은 세상의 창조자’라고 한다. 세상은 사람, 하늘, 땅(Hard)과 오묘한 시스템(Soft)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돌아간다. 즉 여기서 창조자란 하드와 소프트를 아울러는 개념으로 보인다. 반면 Architect는 하나의 System을 만드는 자로 Soft 개념이 강해 보인다. Architect는 새로운 무엇을 설계 기획하는 자, Creator은 새로운 무엇을 만드는 자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으나 나는 Architect와 Creator는 둘 다 간단히 ‘창조자’라 표현하고자 한다. 다만 Creator가 창조성(새로운 것을 만든다)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창조성은 어떤 때에 왕성할까? 남자와 여자 중에는 어느 쪽이 더 클까? 내 막연한 생각으로 젊은 나이에 매우 왕성하고 나이가 들어감에 서서히 줄어들고, 남자가 여자보다 더 왕성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남성호르몬(Testosterone) 때문일 것이다. 젊은 남자 가수가 요절하고 젊은 예술가가 기인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예술, 문학, 과학, 등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생리현상이 인간만이 가지는 이성과 결합될 때 생기는 것이 바로 창조성이다.

 

Male Hormone(남성호르몬, Testosterone)에 대하여 알아보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남성 생식기능, 근육량, 에너지, 자신감, 집중력, 등등 전반적인 활력에 관여한다. 30대 이후 매년 1%씩 감소하며 스트레스, 수면 부족, 영양불균형으로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과거에 친구들이 ‘너 좀 괴팍해?’ 하는 적이 있었다. 본래 타고난 성격 때문인가?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과 짓거리를 많이 하고 다녔던가? 요즈음 나이 들어 나를 돌아보니 과거의 즉흥적인 행동이 흥미롭고 별스러웠다. 처한 환경이 달라서 그런 쪽이 더 발달했던가? 혈기 왕성한 젊었을 때는 누구나 다 그런 것이 아닌가?

 

나는 남과 별반 다르지 않는 보통 남성이다. 사람 다 비슷하다. 생각이 비약되니 나는 아무 죄 없는 테스토스테론 탓을 돌린다. 내가 남보다 남성호르몬이 많았나? 젊었을 때는 “나를 꿈틀거리게 하는 그놈이 차라리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다행이 무탈하게 지금까지 잘 왔다. 그 이유는 이성이 내 호르몬과 성격을 잘 혼합시켜 조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많아도 괜찮아“ 그 놈의 남성호르몬이 그냥 계속 내 속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보는 것보다 해보는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공부를 하고 해보는 것보다 일단 해보고 그 다음 지혜를 얻는다. 그리고 고쳐 나간다. 즉 생각나면 바로 실행한다. 그리고 내 식으로 고쳐나간다. 당연 매 과정마다 고민이 많고 좌충돌 우충돌이다.

 

어릴 때는 무엇을 보면 무조건 분해해 보고 다시 조립하는 성격이었다. 보면 그대로 만들어 보고자 했다. 실제 무엇이든 쉽게 만들었다. 신기한 물체와 사물을 보면 ‘왜?’라는 의문사를 붙였다. 저런 예법과 관습은 왜 그럴까? 그런 궁금증이 나를 반항아로 만든 것 같다. Hard 분야뿐만 아니라 Soft에서도 그랬다.

 

부자 집 출신이라면 다소 쉬웠으리라. 넉넉하면 그런 성격이라 하더라도 고생을 덜 했다는 뜻이다. 촌놈이 어릴 때부터 학비 없이 도시로 나왔고 상경하여 대학 공부를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래도 다 해보려고 했다. 뭐, 그때마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했겠는가? 그냥 했겠지.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대학 배지 달고 다니는 70년대 말이었다. 그때 청계천 고물상에 자주 갔다. 고물들이 얼마나 신기한지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돈이 없어 하나도 사지 못했다. 구경만 하고 길가 포장마차에서 국수 한 그릇과 소주 몇 잔으로 배를 채웠다. 고물을 보고 느끼고 그 기분에 소주 한잔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황홀했다. 그런 기분에 주기적으로 그곳을 돌아다녔다.

 

그때 카세트테이프녹음기가 막 나온 시절이었다. 중고 소니 카세트를 보았다. 밥 돈을 모아 중고로 하나 샀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는 건전지를 매번 살 돈이 없어 전기 없는 집 밖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영원히 사용할 수 없는 건전지는 없을까? 하고 청계천을 뒤졌다. 그때도 예비 전력이 필요로 하는 기계나 제품 속에 Rechargeable 건전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본체에서 분해된 Recharger 건전지가 거리에서 팔리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저것을 사면 계속 사용할 수 있으리라 하고 구입했다. 그런데 충전 후 몇 분이 가지 않았다. 점점 더 사용 시간이 단축되었다. 왜 그럴까? 만지고 분해하고 하면서 많이 고민한 적이 있었다. 요것이 잘 되었으면 대박이었을 텐데?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공부는 안하고 세상 고민은 다 내 것인 양 하면서 살았다. 즉 밥 먹을 돈으로 술만 퍼 마셨다. 당연 낙제가 되었다. 그때 건축학이 가장 홀대 받는 시절이었다. 이것이라도 하자 싶어 전공을 했는데 보니 무에서 유를 만드는 디자인공부였다. Architecture였다. 이는 광범위한 지식과 지혜로 하나의 시스템을 Output 하자면 많은 고민과 창의가 필요로 하는 전공이며 효용 가치가 있는 시스템 전체를 그린 그리는 작업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적성에 적합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돈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자체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돈이 되지 않았다. 그뿐인가 캐나다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할 때도 그랬다. Artist가 밥 먹여주는가? 돈을 벌려면 그런 것들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오직 창작에만 열정을 부었다. 그런 것에 재미를 너무 느꼈던 것이다.

 

고교 시절에는 상경이 최고 목표였다. 내 눈에는 서울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연 한반도 이외의 세계는 눈과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학시절 친구들이 귀에 워크맨을 많이 끼고 다녔다. 영어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애써 나는 그들을 외면했다. 서울에서도 바닥인데 내가 외국은 무슨? 영어는 무슨? 나는 그들과 아주 계급이 다른 사람이야?

 

그런 기억이 내 무의식 속에 있었나? 대학 졸업 후 건축사가 되어 나는 지방으로 내려와 설계사무소를 열었고 몇년 후 IMF 환란 때 사무소를 접었을 때, 문득 ‘이번에는 외국이야!’ 했다. 한 번 생각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하니 캐나다 정부로부터 영주권이 나왔다. 영주권은 내 자신과 가족을 설득하기 위한 최상의 핑계가 되었다.

 

살고 있는 지방 아파트가 내 전 재산이었다. 이것을 팔고 준비 없이 무작정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로 갔다. 그때 내 나이 48세였다. 영어가 별것인가? 캐나다도 사람 사는 곳이다. 닥치면 다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겁 대가리 없는 짓이었다.

 

캐나다에서 살아보니 쉽지 않았다. 아는 것은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말도 못했다. 그래도 내 형편대로 대충 살면 된다. 그런데 무슨 지랄인지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그림을 그리고 공예를 했다. 그냥 그림과 공예를 즐기면 될 일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또 헤매고 다녔다, 대학 4년과 대학원 3년 동안을.

 

아마도 나는 평생 스스로 의문을 만들고 살아 왔는가 보다. 남들이 보기에는 반항이었는지 모른다. 차라리 삶이 아슬아슬 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고민하고 생각하여 Output 해야 사는 재미가 난다. 반복하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 특별한 재미가 있는 영상이 아니면 한두 시간이면 지루함을 느낀다. 그러나 새로운 무엇인가 만들면 신이 나고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왜 이럴까? 또 내 몸속에 흐르는 남성호르몬에게 그 죄를 덮어 씌어 본다. 남성호르몬이 많으면 혼란스럽다고 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도 생각난다. 나는 너무 집중해서 탈이다.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남보다 남성호르몬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 그 말이 맞는다고 장담 못하지만 적으면 온순해짐이 틀림없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온순해지고 밖으로 돌던 사람도 집으로 들어와서 안주하려 한다. 젊은 시절 밖으로 마구 돌려고 하는 경향이 바로 창조의 바탕이 된다. 늙어 집에 안주하고 그제야 여자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에게 무슨 창조가 있겠는가? 그래서 늙으면 기존에 하던 것이라도 잘 유지하는 것이 최고라고 한다. 이는 남성호르몬이 고갈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남성호르몬이 충분하면 남성다울 것이다. 왕성하면 당연 여성에 관심이 많다. 나는 항상 내 식으로 여성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젊은 시절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도 그것은 매우 좋다. 젊으나 늙으나 남성은 남성다운 것, 여성은 여성다운 것이 매력적이다. 그런 사람이 창조를 추구한다.

 

최고의 사람을 만나 결혼해야 해? 결혼은 한 번이야! 이런 억압을 강요하는 관습은 창조성을 없앤다. 좌충돌 우충돌 해도 순수성만 잃지 않으면 매우 좋다. 인생 한 번 산다. 사람 무리들이 만든 관습에 따라 온순하게 저항 없이 사는 것은 창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맞지 않다.

 

매일 놀면 너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한다. 특히 은퇴한 사람들의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일을 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획할 줄을 몰라 타의로 자신을 구속시키는 것과 같다. 돈이 없어도 건강하고 창조적이라면 둘려보면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느끼고 감동되고 울고 깨져도 타의가 아닌 자의적이라면 얼마든지 웃을 수 있다.

 

노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더욱이 나이 들면 한정된 것이 시간이다. 나이 먹을수록 시간은 금이다. 젊었을 때는 모르나 나이 들어 돈 벌기 위해서 남의 밑에서 수동적으로 일을 한다면 그 시간이 아깝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계획하며 삶을 만들어 나간다면 이는 정말 창조적이다.

 

지금 나는 65세를 넘겼다. 70을 바라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좌충돌 우충돌 했어도 그 젊었을 때가 좋더라는 생각이다. 그런 창조와 반항이 없는 삶이었다면 아마도 지금 후회하고 있으리라. 한 번 사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관습과 유행에 따르는 온순하고 무난한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 거세한 애견의 인생이다. 보고 느끼고, 듣고 감명 받고, 서로 사랑하고, 혹은 울고 웃고 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권이 아닌가? 그것을 포기하면 거세된 인생이다.

 

경주에서 전원생활을 할 때였다. 65세를 막 넘기는 찰나였다. 아직까지 비뇨기에 이상은 없다. 제 구실을 잘한다.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요즈음 나는 작품 활동도 안한다. 그냥 자연에 묻혀 안주 하고 싶어 한다. 매일 일상의 타성에 젖어 사는 것 같다. 축 쳐진 것 같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왠지 사는 재미가 없다. 이제 내가 노인이 되었는가?

 

경주 시내를 둘려보다가 비뇨기과의원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요즈음 의원은 최신식이고 그곳에 근무하는 젊은 여성 직원도 많았다. 좀 쑥스러웠지만 용감히 들렸다. 그리고 의사에게 심각한 척했다. “요즈음 자다가 가끔 소변 때문에 깹니다.”그 말에 의사는 바로 여러 군데를 돌리며 검사를 진행해 주었다. 고맙게도 남성호르몬 수치검사도 해 주었다. 내가 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결과가 금방 나왔다.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남성호르몬 수치는 나이에 비해 양호합니다’라는 의사의 말만 들렸다. 내 몸 내가 제일 잘 알기에 다른 결과는 관심이 없었다.

 

아직 나는 젊구나. 예전처럼 좌충돌 우충돌하면서 살아도 괜찮구나. 앞으로 10년까지는 말이다. 젊었을 때는 떼어 버리고 싶었던 혈기였다. 그놈의 Testosterone, 힘들면 다 그놈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인생의 묘미와 흥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는 그놈이 아니라 그대다. 아름다운 열정이다. 이젠 괜찮아. 너무 좋아. 그대여, 환영해. 그대 덕분에 이리저리 헤매어도 차라리 노년의 따분함보다 좋다. 더 살맛이 난다. 난 그대를 사랑하다가 죽을래?

 

이런 생각을 하다니. 병이 아닌가? 노년에는 조용하고 무덤덤한 생활이 좋은 데 말이다. 그래야 말년에 별 탈이 없다. 그런데 나는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1년 후 나는 내가 손수 지은 전원주택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도시로 나왔다. 동굴 안에서 햇빛이 비치는 동굴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