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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14 Outgrowing God(신, 만들어진 위험) 책을 읽고

Hi Yeon 2025. 8. 14. 21:59

 

 

250814 Outgrowing God(, 만들어진 위험) 책을 읽고

 

매일 나는 내 아파트에서 운동하려 주민센타 복합커뮤니티에 간다. 운동이 끝나면 그곳에서 인문학강좌에 참석한다. 그 강좌가 끝나면 다른 인문학 강좌에 또 참석하게 된다. 이번에는 성경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강의는 참신하고 깊이가 있었다. 덕분에 성경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알게 되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예전에는 대충 지나쳤을 건물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바로 성당이었다. 성경을 공부한 덕이었다. 그 뿐만 아니다. 평소에는 있어도 보이지 않았을 광고판이 눈에 속 들어 왔다. 성당 건물에 걸린 예비신자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 다음 주일에 그 프로그램에 지원하였다.

 

평소 신(God)을 보는 눈과 마음은 항상 이성적이었다. 아무리 믿어 보려고 하고 기도를 해 보았지만 건성이었고 마음이 닿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았다. 절에도 다니고 교회도 가보고 성당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사람을 사귀고 교제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절에 가보자 하면 따라 나서야 했고 교회에 가자하면 역시 따라 나섰다. 그렇구나! 성당은 총각 때 여자 때문에 잠깐 갔었다. 이 중에 가장 감명을 받았던 기억은 5년 전 친구 따라 10일 동안 절에 가서 참선하는 기간이었다. 그때 천수경을 모두 암송하였으며 정말로 참회와 무아지경의 경지를 맛보았다. 생각해보니 그때 열정은 대단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고 나 자신을 닦는 수양 같은 것이었다. 절은 보통 멀리 있다. 자주 가기에는 지리적으로 멀었고 크리스트교 같이 매 주마다 참석해야 한다는 개념은 없었다. 생업에 바쁘다 보니 1년이 지나자 시들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힘들여 스스로 닦는 것보다 그냥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크리스트교의 편리성에 현혹되었지 않나 한다.

 

아니 나이가 들면서 내 자신이 약해짐에 따라 마음도 약해져서 그런가? 이렇게 요즈음 믿지도 않은 신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방황하기도 하고 성경 강좌에 가보기도 하며 마침내 예비신자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참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평생 나의 의식 속에는 이런 것이 있다. 불경을 보나 성경을 보나 형식은 크게 권위적이다. 쉬운 것을 매우 어렵게 말하고 어려운 문자로 표현한다. 그 옛날에는 성경이나 불경은 아무나 읽지 못했다. 쉬운 문자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 쉽게 알 수 없는 특별한 것이야하는 과시 같은 것이다. 그래야 고상하게 보인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자주 이렇게 느낀다. 성경은 마치 Fiction같다. 사실성보다 은유가 많고 상징이 많다. 아마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을 후대에 기술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성경 내용을 사실로 여기기가 어려웠다. 너무 소설 같아서 말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믿으려 하니 마음이 따라 주지 않는다. 믿음은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반복이 되어야 습관이 된다. 나는 그렇지 않았으니 쉽지 않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절에 자주 갔다. 그래서 지금도 절에 가면 마음이 끌린다. 그래도 거기까지다. 스님이 말하는 형이상학적 뜬 구름 잡는 이야기는 역시 내 마음에 닿지 않았다. 그래도 그 중 불교는 자연 현상적 개념을 많이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간다는 둥, 무에서 와서 무로 간다는 둥, 이런 말에도 귀가 솔깃했지만 내 스스로 맞는다고 주장하기에는 논리적인 개념은 약했다.

 

이렇게 항상 의문에 의문을 달고 살았으니 한 곳에 푹 믿음을 둘 리가 없었다.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고, 이제 나이 들어 절에 가서 천수경을 암송하고 참선과 참회를 진정 하였지만 역시 그랬다. 지금 성경을 공부하고 예비신자 프로그램에 가서 배우고 기도하여도 역시 그렇다. 그래도 이제 나이 들고 보니 힘이 없고 마음도 약해지니 하나라도 믿어야지 하고 다닌다. 그러다 보면 믿게 되겠지. 믿든 안 믿든 다니면 내 생활에 득이 되고 유익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닌다.

 

내가 7살 때였다. 어머니는 어려울 때 무당을 불려 굿을 자주 하였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 우리는 이렇게 토속 신에게 빌었다. 앞마당에서 굿판이 벌어졌는데 어머니는 굿판 중앙에 대나무를 쥐고 있었다. 무당이 그 둘레를 돌면서 칼춤을 추며 신바람 같은 소리를 지르면 어머니 몸이 떨리면서 어머니가 쥐고 있던 대나무가 마구 흔들었다. 어린 나는 귀신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살그미 물어보았다. “어머님 그때 손에 쥐고 있었던 대나무가 마구 흔들렸는데 어머니가 흔들었나요, 아니면 저절로 마구 흔들렸나요?” “몰라 나도 정신이 없었지. 그냥 흔들게 되더라.” 어머니의 그 대답에 아 그랬어요.” 하고는 나는 웃고만 말았다.

 

어느 날 도서관 서고를 둘려보는 도중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 만들어진 위험, 범상치 않는 제목이었다. 많은 책 사이에 있는 하나의 책이다. 관심이 많으니 저절로 보였다. 바로 대출을 받아 집에서 숨도 쉬지 않고 읽고 생각하고, 또 읽고 메모했다. 평소에 신과 종교는 이럴 것이다하는 막연한 내 생각이, 정리 되지 못한 내 의심이, 이런 것 같은 데 확신을 할 수 없는,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었던 내 의심이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내 희미하고 막연한 생각을, 사실 나도 그리 생각을 했는데, 내 생각을 어찌 이리도 일목정연하게 논리적으로 말할까 하고 감동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신이 있다고 믿을 수는 없어도 신을 믿을 때가 있다. 이제는 성당에서 교회에서 자주 듣고 보고 한다고 쇠뇌가 될 나이가 아니다. 내 노년의 마음 안식처에 도움이 된다면 다니면 된다. 하나의 종교가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서 지금까지 번성해 왔다면 그 속에 나도 배워야 할 천년의 문화가 있을 것이다. 무엇을 배워서 알고 믿고, 현명하게 되는 것과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은 서로 다르다. 가려가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면 된다.

 

변절자다. 가짜라고 하여도 괜찮다. 신이 있든 없든, 태초에도 지금도, 언제 어디에서나 약육강식의 세계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들과 그들이 만든 신을 알기 위해서 교회, 성당, 절을 다니고, 신을 위해서, 교회와 성당과 절을 위해서, 혹은 신도를 위해서 다니는 것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해서 다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Outgrowing God(, 만들어진 위험)

저자 Richard Dawkins, 2006년 출간, 2019년 번역 김영사에서 출판

나는 책을 읽고 중요한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그리스, 로마, 이집트, 고대 국가에서는 모두 다신을 믿었다. 그러나 크리스트교는 하나님, 예수, 마리아를, 사실은 각각이 신인데, 삼위일체로 보고 일신교를 주장했다. 우리는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혹은 주위로부터 우연히 신앙을 믿는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부모의 선택에 의해서 믿는다. 그리고 애기 때부터 그 신앙에 젖는다.

 

복음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바울로의 서신이다. 예수가 죽은 지 3040년 후의 일이었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을 적은 것이다. 반목의 시대 구전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아브라함과 요셉의 이야기는 히브리 전설의 일종이다. 많은 복음서 중 오직 4개만 로마공의회에서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나머지 50개는 이단으로 취급받거나 내용이 서로 달라 채택되지 않았다.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 골라서 만들었는가?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시조로 3대 일신교 신앙인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창시자다. 구약은 신화 전설로 내려온 것을 600년 후에 쓰였다. 모든 민족은 나름 신화를 가지고 있다. 교양 있는 신학자라면 그것을 역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유대 신화가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정경에 담겼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유대인의 창조 신화다. 이런 비범하고 중요할수록 그 증거는 훌륭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는 인종청소, 아동학대, 폭력, 전투, 대학살, 강간, 성노예가 자주 나타난다. 십계명을 살펴보면 질투의 신(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마라)이며, 복수의 신(눈에는 눈으로 갚아라)이다. 만약 섬기지 않으면 3대를 멸한다고 했다. 이는 인종청소이며, 폭력의 신(안식일을 어기면 돌로 쳐 죽여라.)이다. 부족 내에서는 살인을 하지 말라 하고는 다른 부족은 죽이라 명한다. 이는 전투의 신이며 대학살의 신이다. 여성도 남성의 소유물이다. 이는 강간과 성노예의 신이다.

 

크리스트교를 설계한 장본인은 사도 바울이다. 그런데 신은 구약의 야훼에서 신약의 크리스트로 변한다. 성직자들은 성경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것은 은유이고 상징이라고 에둘려 말한다. 어떤 때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때는 상징으로 치부한다. 즉 성경의 메시지는 솔직하고 분명하게 전달하기보다 우회적이거나 상징적으로 전한다.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된다.

 

도덕 철학에서 절대론과 결과론은?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종교가 필요한가?

성경, 코란에서 신을 믿을 만한 타당성이 있는가?

성경에서 신의 도덕적 기준은 그 시대의 기준이었다. 오늘과 다르다?

 

저자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그래도 여전히 높은 힘, 우주, 생명체의 그 아름다움, 복잡성은 마치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창조한 절대자에의 지능에 대한 믿음에 매달린다. ‘그래, 분명히 설계자가 있을 거야라고 믿는다.

 

왕과 성직자들이 종교를 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종교끼리 경쟁을 통하여 발달했다. 종교는 정복자를 통하여 확산되었고 호전적인 유일신만이 살아남았다. 그 부수적인 효과로 공동의 종교, 의식, 전통으로 사회 결속과 협력이 촉진되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

 

비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 우연히 비가 왔다. 우리는 이를 패턴으로 여긴다. 그리고 더 신에 의존한다. 부모가 믿는 신을 따르면 더 안전했고 그래서 더 살아남는 이런 DNA가 집단 내에서 퍼진다. 이렇게 종교도 진화를 한다.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신으로 메우려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과학으로 그것을 메우곤 했다. 그 결정적인 것은 찰스 다윈이다. 그는 가장 큰 틈새를 메웠다. 신이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그 단순한 상식을 다윈이 깨뜨렸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우주 자체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은 어디에서 올까?

 

사람이 만들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것은 하향식이다. 미리 설계하여 만든다. 인간의 역사는 그랬다. 그래서 모든 사고는 하향식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은 누군가가 설계하여 창조됐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인간적인 사고다. 다윈과 그 후예들은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보고 상향식 메카니즘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증명한다. 즉 자연선택으로 인한 진화였다. 생존에 필요에 맞게 오랫동안 미세조정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던 신이 우리를 창조한 것보다 우리가 신을 창조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중 우주에 수십억 개의 우주가 있고, 각 우주는 각각의 법칙과 기본 상수를 가지고 있다. 소수의 우주에서 G가 최적의 지점이고, 그 물리의 법칙과 상수가 우연히 생명체의 진화에 딱 맞게 되는 골디락스 우주가 된다. 우리는 그 소수의 우주 중 한 곳에 있다.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생명의 수명, 노화 과정, 모든 것도 각각의 우주에 맞게 설정된다. 시간 개념이 설정되는 것이다. 물질은 여기서 저기로 흐르고 순간적으로 함께 모여서 당신이 된다. 당신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당신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생각나는 문구다. “자연에서 나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