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8 남자들의 아집
오늘 세종 나들이를 하고 경주로 돌아왔다. 대전에 볼 일이 있었고 겸사 세종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내 세종 친구는 세종 토백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자기 고향에서 살아왔다. 부모와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단지 예전에는 깡촌이었지만 지금은 세종이라는 매우 큰 도시인 점만 다르다.
다른 도시보다 급격한 경제적 환경적 변화로 그들의 생활양식은 많이 달라졌다. 단지 의식은 옛날 그대로이다. 토백이 입장에서는 단기간 엄청난 변화이다. 그만큼 중년의 내 친구들도 변화에 따른 갈등이 많다. 부동산 급등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부자가 되어서, 반대로 변화에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갈등한다. 여기서 갈등의 중심은 남자이다. 부자가 된 가장은 가족과의 갈등이 심하고(너가 왜 돈을 다 움켜 쥐나?), 빈자들은 가족들의 멸시에 힘들어 한다(너는 뭐했나?).
그곳의 내 아는 토백이 친구들은, 중부 대전 양반분들, 아집과 관습에 매몰되어 산다. 특히 남자들이라는 사람 말이다. 옛날 선비정신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집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도 옛날 시골 그대로이면 별 문제가 없다. 시골 깡촌에 옛 관습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깡촌에 살기 싫으면 남자나 여자나 도시로 나가면 그만인데…
그곳에 세종이라는 신도시가 생기고 갑자기 그곳에 작은 땅이라도 있는 촌놈들은 떼부자가 되었다. 부자는 되었는데 관습은 그대로이다. 사람은 어려울 때는 안과 밖이 잘 구분되지 않지만 형편이 좋아지면 따진다. 이와 같다. 어제 만났던 그곳 친구는 가정을 다 갖고 있다. 그렇지만 무늬만 그렇다.
남자 환경이 변했지만 여자도 변했다. 여자도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 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여자 나이 60을 넘겨도 나가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그럼 여자가 데모라도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제 60세를 넘기고 옛 사고과 옛 지식에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 “너 때문이야?” 하고 그냥 남자에게 감정만 퍼붓고 산다.
남자는 체면 때문에 너가 발부등 쳐봐야 부처님 손안이지 하고 꿈적도 아니한다. 반면 남자는 집에 가면 왕이지만 속으로는 죽일 놈으로 취급을 받는다. 눈으로 마음으로 분위기로 말이다. 겉으로는 사는 맛이 날지는 몰라도 안으로는 죽을 맛이다. 아집의 양반네들, 고향에서 터를 잡고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은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남자나 여자 모두 아는 것이라고는 습관된 것, 고집스런운 것 밖에 없다. 과거에 보았던 것, 느꼈던 것, 알았던 것만이 전부이다. 변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물론 이제 60을 넘겨 변하면 무엇하겠나만은 세월따라 언젠가는 따라 변해야 한다고 스스로 알면서도 변화를 두려워 한다. 그리고 서로 감정을 던지고 되받고 그리고 조용히 눈 감고 가슴을 닫고 산다.
그들에게 여기가 타향인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그러나 오래 살면 그곳이 고향이다. 고향이란 한 우물같아 우물안의 관습에 따라야 한다. 그들에게 내 같은 타향의 사람을 친구로 두는 것은 어떤 때는 좋다. 한잔하면 마음을 말할 수 있다.
내가 친구를 만나 술한잔 하면 나는 그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가족이 있으나 혼자임을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꾹 가족을 움껴쥐고 살아간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관습에 개이치 않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 댓가로 잃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들은 느낌으로 안다. 그리고 겁이 난다.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하면서 말이다.
몸은 늙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고집과 아집 그리고 가진 재산이다. 특히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렇다. 다행이 언젠가는, 아니 바로 내일이라도, 나라는 인간이 없어진다는 것을 좀 아는, 형편이 어렵거나 건강이 좀 나쁜, 친구에게는 좀 다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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