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과 분황사
경주 분황사 전경 실루엣
181031 시간과 흔적을 느끼는 분황사
요즈음 법륜 스님의 즉문즉답이 많이 회자된다. 작은 소도시에서도 법륜 스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법당이 있을 정도이다. 몇 년 전 나도 법문 스님의 강의에 매혹되어 Youtube로 그 분의 강의를 모두 다 찾아 들었다. 강의 행사에서 한번 직접 참석하여 들어도 보았다. 영상으로 통한 유튜브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감동이었고 동일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그 분의 기본생각이나 핵심사상이 무엇인가를 어럼푸시 알 수 있다. 즉문즉답에서 누군가 물으면 법륜 스님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를 대충 예상도 할 수 있다. 그분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자기 생각에 의심이 없었고 확고했으며, 말씀은 온화하면서도 다소 강직하였다는 것이다. 억양은 조금 경상도 스타일이었다.
나는 그분의 생각을 좋아하고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외국 캐나다에서 10년 이상 살았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서양사상에 많이 동화되었고, 더구나 스스로 서양사상의 좋은 점을 수용하고자 했었다. 당연 우리나라의 유교적 관습과 전통에 있어서, 불합리한 점은 필요에 의해서 따르나 가능한 내 생활에서는 극복하고자 했다.
이런 나의 사고는 법륜 스님의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법륜 스님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나도 그렇게 자꾸 변해보려고 했다. 이제는 변하고 있는 과정이다. 나에게 영향을 준 그분의 사상을 정리 해보았다.
나를 주체로 보고 있다. 내가 있고 주변, 상대, 환경인 네가 있다, 너는 내 감정에 투영이 되어 보이고 느껴질 뿐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온다. 필요하다면 내가 변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은 나로부터 온다.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려 있다. 네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행복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행복이다.
책임론을 주장한다. 내가 한 것에 대하여 그 만큼 책임이 주어진다. 결혼 했으면 그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하고, 애를 낳았으면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는 최소한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주의이다. 인생은 본래 그런 것이다. 욕심 없이 그렇구나 하고 사는 것이다.
좋아하니 당연 그 분에 대하여 알게 된다. 요즈음은 온라인에서 쉽게 간단한 인물정보를 알 수 있다. 스님은 53년생이다. 그분은 경주고등학교를 나왔으니 따져보면 대충 나보다 5년 선배가 되는 것 같다. 경주고등학교는 분황사와 지척에 가깝다. 경주가 분지의 평지이고 학교도 분황사도 그 평지에 있다. 주변도 다 평지인 논경지이다.
학교 교실에서 분황사 쪽을 보면 저 앞 담장너머 분황사 3층 전탑의 꼭지가 보였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그곳에 몇 번 가보았다. 물론 학교와 가까이 있기에 발이 가다 보면 그곳이 되었다. 내가 분황사를 처음으로 가서 본 느낌은 이러했다.
한적
간소하고
허물어져 간다.
쓸쓸하고 외로운 섬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봄 때는 봄 같이 않고, 가을 때는 바로 겨울이 올 것 같은
삼층 전탑만 홀로 너른 들판 한가운데서 남아서 덩그렁 논밭을 굽어보고 있다
법륜 스님은 고등학교 시설에 분황사를 여러 번 방문하였고, 그 계기로 분황사 주지 스님의 인도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출가할 때는 나름 특별한 사연이 있었겠지. 아마도 부처가 출가할 때의 심정과 비슷했으리라. 고등학생 법륜이 분황사에서 느낀 처음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내가 느낀 그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때 그 느낌이 고등학생 법륜을 불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작은 요인이 되었겠지.
보통 우리나라 사찰에는 나름 일정한 가람배치가 있다. 큰 절이든 작은 절이든, 혹은 오래 되었던 안 되었던, 가보면 그 안에서 느낌은 대동소이 하다. 많이 아늑하다던가, 많이 웅장하다던가, 많이 화사하다던가, 규모가 크다던가, 혹은 좀 더 예스러운 느낌이 난다던가 하는 차이일 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은 산 속의 일정한 가람배치의 예를 따르고 있고, 또한 주변의 산세에 조화를 이루면서 둘러싸여 있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분황사는 그런 느낌이 없다. 넓은 경주분지 평야 한가운데 달랑 분황사의 3층 전탑만 홀로 서 있다. 갖가지 나무와 아기자기한 산세 대신 확 트인 농토로 둘려 싸여 있다. 산사에 왔다는 느낌은 여기서는 느낄 수 없다. 그리고 고친 것도 복원 한 것도 없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대로, 헤어진 부분은 헤어진 대로, 덧방치기는 덧방대로 있다. 분명 대부분의 사찰과는 달라 보였다.
학생 법륜은 이런 분황사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으리라. 경주고등학교가 분황사가 아닌 일반적인 사찰의 부근에 있었더라면 아마도 학생 법륜은 아마도 분황사에서 느낀 감정과는 많이 달랐으리라. 처음 느낌이 이렇게 달랐다면, 그랬다면 그때 그 학생은 오늘날 법륜과는 달랐는지도 모른다.
법륜 스님을 알고 최근 다시 분황사를 찾아 가보았다. 분황사를 처음 본 고등학생 시설로부터 4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이다. 역시 느낌은 처음 느낌 그대로였다. 다만 내 많은 나이 덕분에 느낌은 더 풍부해졌다.
분황사 3층 전탑 앞에서 느낌은 사라짐, 그리움, 외로움, 인생, 그리고 황혼, 이런 것들이었다. 넓은 농토를 사이를 비집고 있는 분황사는 산사에서 느끼는 자연 속의 조화로운 고요함과는 확연이 달랐다. 즉 나는 그곳에서 “시간과 흔적”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문화재 건축물이 있다. 최근까지 정부에서 많은 재정을 투입하여 고치고, 다시 세우고, 그리고 복원하고 있다. 새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건물을 새로 건설하고 담장을 새로 둘러치고, 그리고 새로운 자재를 쓰고 새로운 돌을 쌓고 다시 산뜻한 색을 칠한다.
그곳에는 역사와 시간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옛 건물은 있되 표정이 없고, 옛 산성이 있되 이야기가 없다. 마치 그때 그 형태를 복사한 프린트 같다.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얼굴을 성형하고 화장하는 것과 같다. 이야기가 담긴 연륜이 있는 얼굴과 몸이 더 우리를 감동시키고 현재와 미래를 더 많이 감동시킨다.
역사 건축물은 그곳에 시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복원은 최소화 하여야 한다. 복원이 필요하다면, 두고두고 보고 그리고 여러 세대를 건너면서 조금씩 치밀하게 시행해야 한다.
Greece Parthenon(파르테논 신전)에서 기둥만 있는 것이 더 애틋하고 더 예스럽고 더 과거로 돌아가기 쉽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스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우리나라는 유서 깊은 다양한 문화재가 전국에 산재한다. 알 수가 있나? 그곳에서 법륜 스님 같이 역사의 흔적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나올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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