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개사무소는 평소 많이 바쁘지 않다. 보통 중개사무소는 아파트 중개를 주로 한다. 그런 사무소는 아파트 매매, 전세, 혹은 월세 중개일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바쁠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토지나 상가 위주로 중개 활동을 하다 보니 평소에는 많이 한가하다.
특히 요즈음 경기가 좋지 않고 부동산 거래도 침체되어 있어 자연히 나는 더욱 많이 한가하다. 어떤 때는 점심 먹고 퇴근하고, 어떤 때는 다른 볼일 보려 다니기도 한다. 그래도 별일 없으면 사무소에서 신문이나 뒤척인다. 항상 바삐 살아온 나로서는 이것이 지겹고 괴롭기도 하다. 남이 보면 참으로 행복한 고민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한심한 놈이다.
사무실을 같이 쓰는 내 친구 법무사는 전국구 전문가라 매일 서울로 올라간다. 나는 도워주는 형님뻘 사장님하고 사무실을 지킨다. 그 사장님 덕분에 나는 사무실을 떠나 있는 경우가 많다. 마음 다잡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자면 별의별 손님이 다 온다. 토지, 상가, 아파트 등등 부동산 상담에 관한 것은 내 전공이니 당연 오는 손님에게 잘 프리핑한다. 한가하니 많은 정보를 드리기도 하고, 오랜 설계사무소 경험으로 개발, 설계, 시공, 전반적인 개발관련 사항도 덤으로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정부 부동산 정책을 분석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별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부동산은 세금과 많이 연관된다. 당연 모든 세금에 대한 기본 상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동산에 관한 세금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세금 상식을 법규를 보고 숙지하게 된다. 양도소득세, 증여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소득세, 등등... 그리고 친구 법무사와 함께 일을 하니 당연 상속세, 증여세, 취득세, 등등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증여가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상속이 되는지, 가족 분쟁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개인간 어떤 갈등과 분쟁이 생기는지, 혹은 어떻게 해서 특수한 법률행위가 발생하는지 등등도 알게 된다.
일단 손님이 내 가게에 들어오면 나와 관련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냥 돌려 보낼 수 없다. 돈 되는 일만 골라서 상담하고 그렇지 않는 것은 바쁜 척하여야 하지만, 말하는 것이야 돈드는 일이 아니지 하고는 내 돈으로 산 박카스 한 병 드시라고까지 하면서 이 말 저 말 해댄다. 어떤 때는 내가 하는 짓이 푼수가 없기도 하여 회의감마저 드는 경우도 많다.
한 날은 아는 지인이 와서는 임대주택사업자 등록에 대하여 고민을 하였다. 워낙 정부에서 다주택자를 범죄자 취급하면서 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분의 재산 목록 설명을 듣고 세금과 장단점 그리고 향후 전망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다음 주 그 분은 이미 등록한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취소하고는 고맙다고 나에게 점심 한끼를 사주었다. 강남도 아닌 집 3채를 다 합쳐봐도 공시지가가 얼마 아니 되는 것을 가지고 마치 정부가 재산을 다 빼앗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 여기 도시 주민이 와서 우리 여기 집이 두 채인데 "큰일 났어" 하는 나이든 분들을 자주 본다. "지방의 작은 도시의 집, 두 채 혹은 셋 채는 집도 아닙니다. 올라야 세금을 내지요" 하고는 웃어 넘겨 버린다. 이 분들은 대부분 아파트 값이 100원 오르면, 100원을 다 세금으로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며칠 사이에 여러 종류의 손님들이 사무실에 들렸다.
"아버지가 딸에게 아파트를 주고 싶은데?" "그래요. 어디에 있는 아파트인데요? 아 그래요, 공시지가가 얼마 아니 되니, 증여세 공제하면 세금도 없는 것으로 생각되네요." 친구 법무사에게 전화하여 물어 본 후 필요한 이런 저런 서류 말해 준다. 꼭 마지막에는 손님이 "요금은요?" 하고 묻는다. 대답은 보통 이런 식이다."공과금은 서류를 준비한 후 모든 정보를 보아야 알 수 있으며, 수임료는 법무사께서 원하는데로 깍아 줍니다."
어제는 젊은 삼촌이 24살 정도 조카 남자 애를 데리고 사무실로 왔다. 모른 척 할 수 없어 들어보니,
"이 놈 내 조카가 술을 마시다가 젊은 애기 엄마와 시비가 붙어 머리를 서로 쥐어 뜯으며 싸웠는데, 그 여자가 진단서를 첨부하여 돈을 원하길래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경찰에 고소했는데, 어쩌면 좋죠?"
"조카도 다쳤을 것인데 진단서 받아서 같이 고소하면 되겠네." 친구에게 조언을 받아 한 말이었다. 서로 평형이 유지가 되면 쉽게 해결되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그냥 술 한잔 먹고 의미 있으면서 없는 것 같은 말을 하기도 참으로 하기 어려웠다. 도워 준다고 괜히 말 잘못했다가는 큰일 날 수가 있다는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오늘은 40대 남성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 오면서 쭈빗쭈빗 하게 말을 걸었다. 부동산 상담은 아닌 것 같았으나 의자를 내 주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친구 법무사 손님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들어본 즉 이러했다.
"며칠 전에 나보다 나이 어린 어떤 남자와 말 다툼하다가 화가 나서 살짝 등을 손바닥으로 쳤는데, 아니 그 놈이 날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내일 모래까지 경찰서로 오라는 출두명령을 받았는데, 무엇이라 말을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아서. 어떻게 해야지요?"
그분 직업은 공무원이었고 막상 당하고 보니 일반적인 사회 경험이 없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것 같았다. 꼭 초등학생이 싸움질하고 나서 쩔쩔 매는 꼴이었다. 사무실을 떠나지 않고 자꾸만 애걸 복걸하니 무엇이라도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정말 안 때렸어요? 그렇다면 안 했다고 버티면 되지 무엇이 그리 걱정입니까? 초등학생 수준으로 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서로 주장이 평형이 되면 저절로 해결되겠죠? 괜찮아요. 안했으면 안 했다고 고집 부려야지. 그래야 공무원 신분에도 괜찮고, 걱정마세요. 내일 다시 와서 법무사, 혹은 이 빌딩의 변호사와 상담하세요. 여기 법무사는 많이 바쁠 것 같고, 변호사는 각오하고 상담하셔야 할 것 같네요."
좀 시간이 지났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올 때 보다 많이 씩씩하게 사무실을 떠났다. 어떤 때는 고객들이 고맙다고 하고는 "상담료는요?" 하고 묻는다. "부동산이나 건축 상담은 몰라도 다른 것은 상담한 것 없습니다. 내가 무슨 상담을 했습니까?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하는 식의 술 한잔 마시고 안주 뜯는 것 같은 소리입니다." 하니 손님들은 그래도 그냥 가기가 얼굴이 따가웠나 박카스 한 박스를 사 와서 테이블에 놓고 나간다.
테이블에 놓인 박카스 박스를 열고 무심코 한 병을 따서 마신다. 이런 것 마셔도 되나? 외면할 수 없고, 좇아 낼 수도 없고, 잘 말해 줄 수도 없고... 잘 말을 안 해줄 수도 없고. 애고 애고이다. 구릉이 담 넘어가는 말 같은 것이나 해야 하니 애고이고, 술 마시고 하는 말처럼 답이 진짜 있으면서 답이 없어 보이는 휭설수설 같은 것을 해야 하니 애고이다. 내일은 또 무슨 손님이 와서 무슨 말을 하려나?
법무사 사무소, 세무사 사무소, 변호사 사무소, 건축사 사무소에 들려서 물어 보면 돈이 들 것 같고,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쉽지 않고, 힘들게 답을 구했다 하더라도 그 분야에 대한 단편적인 답일 것이고 종합적인 것이 아니니 답답하고, 사무소 영업 실적 올리기 위해서 하는 말 같기도 하고, 그래서 쉬운 방법으로 여기로 오는 것 같은데... 만약 제대로 상담해 주면 나중에 친구가 야단친다. 혹 "내 보따리 내 놓아라"고 하는 일도 생긴다고. 그럼, 친절한 척하면서 졸아야지. 아니면 법무사, 변호사, 건축사 명함을 주고는 전화 한번 해 보시라고 하면서 모르는 척 할 수 밖에, 그래서 애고 애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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