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빚과 재산은 동시에 상속된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여야 하루가 길어진다. 좀 늦게 시작하면 하루가 하다가 만 것 같다. 내 사무실이니 늦게 시작하여도 누가 잔소리 할 사람이 없지만, 아니 일찍 가 봐야 할 일도 별로 없지만 내가 내 자신에게 잔소리를 한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방 안에서 요가 30분을 하고 사무실로 출발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거리는 대충 35 Km이다. 천천히 운전하면 50분 정도 걸린다. 미리 출근 전에 현장을 둘러 보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보통 사무실 문 여는 시간은 오전 9시 조금 전이다. 아침 먹을 거리는 운전하면서 시리얼로 보통 때운다.
사무실은 시청 앞 넓은 언덕을 마주하고 있다. 이 언덕에는 시청에서 관리하는 나무와 잔디 그리고 자연림이 있다. 내 사무실은 도시와 자연을 동시에 함께하는 셈이 된다. 오늘은 청명한 가을 아침을 맞는다. 찬바람이 들어 오도록 사무실 문을 활짝 연고 FM 라디오를 켠다. 원두커피 가루로 커피 한잔을 내린다. 커피 향이 사무실을 가득 채울 쯤 그때 사무실의 문을 닫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조간 신문을 펼친다. 가을의 색체가 사무실 넓은 창 앞으로 푸른 듯 붉은 듯 비친다.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인 것이다. 올 가을은 어느 가을보다 청명하고 시원하고 그리고 깨끗하다.
9시부터 10시 사이 나는 이런 시간을 조용히 즐긴다. 그리고 10시가 지나면 가끔 한 두 사람들이 사무실을 들린다. 부동산 침체기에 별 손님이 없다. 없으면 이런 느긋함을 즐긴다. 커피와 가을 그리고 한가함이 가끔은 지루함을 던져 주면서 나에게 인생의 의미를 묻기도 하기 때문이다.
젊은 아가씨 같은 여자 분이 방문했다. 의자를 내주고 앉기를 권했다. 큰 봉투 3권을 내 보이고는 그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순서 없이 나에게 토해내기 시작했다. 불안하고 어수선하고 힘들어 하는 언어와 감정의 연속이었다.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는 애기 엄마입니다. 남편이 2년 전에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법원으로부터 이런 요상한 서류를 받았읍니다. 읽어보니 사업하였던 남편 생전에 빚진 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읍니다. 어떻해 해야 해요? 여자 혼자 벌어서 애들을 키우기란 너무 어렵워요. 남편이 죽고 남편 명의 아파트 (매매가 1억 5천만원)를 유산으로 나와 애 둘 명의로 받았는데, 생전에 남편에게 어떠한 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읍니다. 매일 잠을 못 잡니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 남은 재산 끌어 모아 상가 한칸을 구입했습니다. 남편 친구의 권유로 대전 시내의 5억 상가 한 칸을 그 남편 친구와 공동 명의로 구입하였읍니다. 나는 2억 5천의 현금을 지급하였는데 그 남자는 그 만큼의 돈을 은행대출로 충당했읍니다. 그 남자가 임대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매달 100만원을 나에게 주었는데, 이제 겨우 상가 임차인이 나타났읍니다. 불안해서 투자한 2억 5천을 돌려 달라고 하니 그 남자가 화를 내었읍니다. 모든 것이 불안합니다. 어떻게 하면 돼요?"
"건물 위치는 알고 있으나 상가의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이것 저것 따지니 그 남자가 화를 냅니다. 혹 그 남자 기분이 상할까 조심스럽습니다. 그것보다 상가가 돈을 벌어주지 못하거나 그 남자가 장난칠 것 같아 두렵읍니다. 그래서 원금만 되돌려 달라고 요청 중 입니다."
"남편이 죽고 나서 살아 남은 아내에게 빚 청산을 요구하고 남편 친구가 당신의 남은 재산마저 유혹하는 경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홀로 되니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고 당기는 데로 가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사모님을 설령 도워 준다고 하여도 도워주는 사람 자신을 배제한 도움은 없지요. 사람이라는 것은 나를 먼저 우선으로 하면서 돕지요. 그리고 상황이 나빠지면 우선 자기 욕심부터 채우는 것이지요."
"아주머니 혼자 상가에 투자 했다면 좋으나 싫어나 그것에 맞는 이윤을 찾으면 됩니다. 오히려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에 질질 끌려 다녀야 하는 경우이지요. 나쁜 투자이면 그래서 나쁘고, 좋은 투자이면 남 좋은 일하면서 질질 끌려 다니는 꼴이 되어 또한 나쁘지요. 그 남자가 은행대출을 연체하면 공동으로 함께 문제를 짊어집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요. 본인이 원금 돌려달라고 요청하였지요. 돌려주면 다행이지만, 안 돌려주면 앞으로 일어나는 임대 관련 모든 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사인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고 내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시라는 겁니다. 모르면 물어보고 가능한 말로 하지 마시고 문서로 하시기 바랍니다. 다행이 상가 위치가 그리 나쁘지 않으니 남편 친구가 하는 행태가 마음에 안들면 과감하게 하세요. 그 남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약해 보이는 당신을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직접 확인하세요. 그 남자에게 대충 맡기지 마시고."
"남편의 재산과 채무는 동시에 살아남은 자에게 유산되지요. 법원에서 온 남편 채무 지급명령서에 대하여는 법무사에게 물어 보아서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서류 복사하였으니 연락처를 여기에 적어 두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워 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입니다."
그 여자는 겨우겨우 안정을 찾고는 내 사무실을 떠났다. 다음 날 서울로 출장갔던 내 친구 법무사가 돌아왔다. 우선 그녀의 아파트 등기부 등본을 발급 받아 확인해 보니 아파트 소유자(그 여자와 두 자녀 공동 명의) 앞에 가압류가 설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상황 설명하고 법원 서류 사본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대응방법을 물었다. 부인이 죽은 남편의 채무관계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법원에 반박하거나 반대 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반대로 채권자는 그럴 만한 확실한 서류가 있으니 소송을 했고, 채권 확보를 위하여 채무자 재산에 가압류를 미리 해두고 지급명령을 받기 위해서 소송을 했다는 것이다.
"방법이 별로 없다. 채권자가 원하는 금액을 갚는 것이 좋아 보인다. 혹은 그 여자가 많은 것을 아는 척 억지를 부리면 합의로 그 금액을 줄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나, 글세다.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갚으면 되고, 조금이라도 방법이 있으면 해보면 되지만 글세다. 하긴 최소한 빈 밥그릇을 들고 밥풀을 요청하면 조금이라도 밥을 퍼 줄 수 있는 데 말이야. 밥 그릇도 없이 무작정 밥을 달라고 하면 해줄 것이 없다. 생각해 보자구나."
그래, 무작정 도울 수도 없고, 결국 죽은 남편의 채무를 미리 다 갚든가, 혹은 방법이 있다면 그 금액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그래야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지킬 수 있지. 죽은 남편의 삼천만원 채무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경매당하면 안되지 않는가? 그래도 미리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야. 알고나 죽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지. 살아 남은 자는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똑똑해지겠지. 그 여자는 아직 젊으니까, 그러면서 어린 자식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조금씩 똑똑한 싸움닭 여편네가 되거나 혹은 남자를 흔드는 요념한 여인네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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