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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는 나의 에세이

포장마차에서 낮술 한잔

Hi Yeon 2015. 11. 3. 20:39

포장마차에서 낮술 한잔

캐나다 벤쿠버를 떠나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에 사시는 누님댁에 머물면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 거리로 나가 보았다. 고국을 떠난지 10년이 되었지만 이제 고국에 돌아와서 둘러보니 내 눈에는 1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고국의 모습은 별 차이가 없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나 고도 성장시기를 지나 성숙단계에 들어 선 고국은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특별한 점은 서울 빌딩이 더 많아지고 높아졌고, 지하철 노선이 더 많아지고 복잡해졌으며, 그리고 정보 통신과 핸드폰이 더 고도화 되고 첨단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 눈에는 사람사는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이다. 그래서 그런가, 서울 모습은 "내가 지방에 10년 동안 살다가 서울로 되돌아왔구나!" 하는 느낌이다. 마음적으로 이국보다 훨씬 푸근하고 많이 편안했다. 그것은 타향에서 고향으로 되돌아올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서울에서 머문지 일주일이 지났다. 고향에 계시는 큰 형님께서 허리 디스크 검사를 하기 위하여 이틀 후 상경하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형님과 형수님이 아니던가! 이틀 후 병원 예약시간에 형님과 형수님을 만났다. 형님은 우리집의 맏이이고 장손이기도 하다. 공무원으로 퇴직하여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는 형님은 70대 후반이 되면서 여기저기 몸이 고장나기 시작하였다. 그중 하나는 노인네에게 보통 생기는 허리 디스크이다. 병원 결과를 보고 나서 점심을 같이 하였다. 그 동안 밀린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고향인 경주와 서울은 먼 거리이다. 형님은 늦기 전에 서둘려야 했다. 나는 형님과 형수님을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태워 보내 드렸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형님을 보내고 혼자 동부 터미날를 나섰다. 터미날 길가에 줄지어 선 포장마차가 보였다. 옛적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몸을 숙여 안으로 기웃거려보니 오후 3시 대낮인데도 포장마차 안에는 여러 명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젊은 시절 가끔 들렸던 포장마차의 추억과 몸이 불편한 형님을 보내는 울적함이 나를 그곳으로 몰아 넣었다. 나는 오뎅과 소주를 시켰다. 바로 옆자리의 손님이 취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자기 술을 마시라고 한다. 보니 한잔 정도만  따라 마시고 남은 소주병이었다.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좋지요" 하면서 소주병을 받아 연거푸 마셨다. 옆에 앉아 한잔하면 술친구가 아닌가? 그분은 신이 나서 한참 자기 신세타령을 한다. 마눌이 지랄같단다. 얼굴을 보니 벌써 많이 마신 것 같았다. 그는 평택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인 모양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미 선불로 술값을 다 받은 포장마차 주인이 1500원을 그분에게 건넸다. 반 병 넘는 소주를 나에게 주었으니 그것에 대한 거스름돈이었다. 반 병가격을 나에게 받을 의도였던 것이다. 그는 "에이" 그러면서 그것을 마다하고 떠났다. 소주는 한 병 단위로 3000원에 판다. 그분이 마시다 남은 술을 나에게 제공하였기에 주인은 나에게 소주값을 받을 이유가 없어졌다. 나도 소주병을 비우고 일어섰다. 주인은 오뎅값으로만 2000원을 달라고 한다. 나는 3000원을 건냈다.  

도로변 작은 포장마차에서 대낮부터 술 손님들이 많은 것을 보면 수입이 대단할 것이다. 세상은 공짜가 어디 있으랴. 임대료가 없다면 피(프리미엄)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제하고도 수입이 충분하다면 또 댓가를 요구하는 주먹 세계가 있으리라. 만약 그것이 없다면 주인은 포장마차 하나로 때돈을 벌 것이다.  도로에서 허가와 임대료 없이 술과 음식을 팔 수 있는 그러한 권리는 그냥 오지 않는다. 급격한 고도성장 시절 어수선한 제도와 공권력 하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이권이었다. 지금도 세상은 허술하고, 우리는 민생이냐 공권력이냐를 두고 고민한다. 어쨌거나 서민에게는 단비와 같다.

백주대낮에 소주 한잔을 하였으니 아딸달하였다. 기분도 괜찮다. 몸이 흔들흔들한들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바쁠 일도 없다. 한잔 술까지 걸쳤으니 걸음거리는 느릿느릿하다. 전철역에서 표를 사고 돌아서니 젊은이 한 분이 나를 세운다. "강원도 어디 가야 하는 데 갑자기 돈이 떨어져서 ... ...."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동전이 제법 있었다. 다 쥐고는 젊은이의 손에 놓았다. 전철역 검색대를 통과하고 뒤를 쳐다보니 그놈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2호선 강변역의 프렛폼 위에서 전동차를 기다렸다. 쭉 뻗어나간 전동차 레일 위 저 멀리서 전동차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바람을 일으키면서 멈춘다. 이것은 10년전의 모습이다. 이제 스크린 문이 프렛폼과 선로 사이를 가로 막고 있다. 깔끔하나 답답했다. 이제 레일 넘어 저 멀리 반대편 프렛폼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영영 볼 수 없다. 가고 오는 전동차가 마주보며 진행하면서 차창이 서로 빠르게 교차하고, 그 차창 사이로 영화 스크린과 같이 빠르게 겹쳐지는 사람들의 실루엣도 옛추억이 되어 버렸다. 

전동차의 작은 금속 소리가 나고, 그리고 스크린 문이 전동차 문과 함께 열렸다. 안에는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서 복잡하지 않았다. 다만 차랑이 움직이는 소리와 안내 방송이 정적을 대신했다. 사람들은 귀에 무엇인가 꼽고 작은 화면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광경이나 신문을 펼쳐 보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은 옛날 이야기이다. 전동차가 금속음을 내고 달려나갔다. 2호선은 지상철이다. 심심한 눈을 차창으로 돌려본다. 햇빛 줄기가 반짝거리며 차창 사이로 솟아져 들어온다. 바로 한강이 보이고 곧이어 잠실 들판이 나타났다. 차창 너머 멀리서 흉하게 솟아난 롯데월드타워(123층, 555m)가 자본주의를 과시하며 지나간다.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