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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131228 어머니께서 삶의 끈을 놓으시다

Hi Yeon 2013. 12. 28. 07:23

131228 어머니께서 삶의 끈을 놓으시다

 

이민 온 그 해가 저물고 새해가 되었다. 눈이 부슬부슬 내리는 1월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단다. 오늘이 가시는 날이고 굳이 올 필요가 없다맏형님의 목소리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술병을 찾는 것뿐이었다. 그래야 꿈에라도 어머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며칠을 밥 대신 물 대신 죽어라 술만 퍼마시고 환상 속에 헤맸건만 어머님을 결국 만날 수는 없었다. 대신 술은 내 몸과 마음을 마구 난도질했다. 어머님을 떠나보내게 한 그 원흉인 내 자신을 마구 죽이고 있었다. 그래, 이민이 어머님을 돌아가시게 했어. 내가 어머님을 그렇게 했어.

 

고대하던 캐나다 영주권이 나오자 나는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서 계시는 시골을 찾았다. 대가족의 종부인 어머니는 부모 형제 자식들을 다 내 보낸 후에도 병든 몸을 안고 홀로 살고 계셨다. 이때 막내인 나를 지켜보고 가끔 만나 보는 것이 어머니께서 살아가는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이민 진행과정에서 미리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 결정이 난 후에 어머니에게 고하였다.

 

"어머님, 캐나다로 이민을 갑니다."

 

갑자기 홍두깨도 유분수지, 그러나 그런 내색도 없이 어머님은 한 번 더 물어보고는 담담하셨다. 옛날 미국으로 이민 간 먼 친척의 이야기를 주워들어 어느 정도 이민에 대해 아는 바, 가면 못 온 다는 것쯤도 잘 알고 계셨다. 아무리 세상 일에 어둡고 시골에 사는 늙은이라 하더라도 세상을 오래 살다보면 눈치로 안다. 어머님의 말씀은 간단하고 명료하셨다.

 

"그래 너의 장래를 늙은 내가 잡을 수가 있겠나, 잘 했다."

 

하시면서 쾌히 승낙을 하셨다. 어머니는 그때 눈물 한 방울을 보이지 않으시고 말씀하시고 흩트려지지 않으셨다. 평생 부모 형제 자식이라는 대가족을 이끌고 험난한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오신 종부가 아니신가. 하루 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어머니께서 차려 주시는 아침상을 들고 나서 어머님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집 대문을 나셨다. 잡은 어머님의 두 손을 놓으려고 하는 데 그만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우셨다.

 

"애비야... 너 없으면 내 어찌 살꼬... ... 너 없으면 나는... 어찌 살꼬... ...“

 

그로부터 딱 1년 후 어머님은 돌아가셨다. 그때까지는 나는 어머니의 그때 마지막 말씀의 의미를 몰랐다. 벌써 1주일째 나는 밥 대신 매일 술만 먹었다. 이제 환영이 아니라 새카만 어두움만 보였다. 바닥이었다. 어둠 속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는 데 내 입에서 무엇인가 불쑥 튀어 나왔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그때 쥔 끈을 놓았다. 삶의 끈을...”

 

며칠 후 나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해골 같은 내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눈을 똘망거리며 처다 보는 두 아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달렸다. 매일 나는 달렸다. 시간만 나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서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일도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초심으로 돌리고 어린애가 일어서서 이제 막 달리듯이 나의 이민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