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24 무릎 수술을 하다
고향 경주에서 전원주택을 손수 다 짓고 혼자 살아보니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집에 계속 머물면 사람이 축 처진다. 사실 집을 손수 지을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노가다 일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당연 일이 끝나면 자고 일어나면 일하는 일상이 되었다. 나가서 조깅을 하고 운동할 일이 없었다.
전원주택을 다 짓고 시골에 혼자 지내니 무료 하였다. 내 집에서 30분 걸어 올라가면 불국사다. 그곳에서 1시간 등반을 하면 석굴암이다. 나는 매일 자전거를 몰고 불국사에 내려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석굴암에 올랐다. 땀을 흘리면서 달리고 등반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가슴이 펑 뚫리는 기분이 된다. 돌아오면 정오 정도다. 이때부터 무엇인가 하고자하는 의욕이 마구 생긴다. 이때 글도 쓰고 공예작업도 한다.
전원주택을 처분하고 세종으로 이사를 와서는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는 정적인 공간이다. 사람은 하루 종일 정적인 공간에서 정적인 일로만 지내면 몸과 마음이 다운되기 쉽다. 동적인 일과 정적인 일을 반반씩 하면 좋다. 이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좋다. 그래서 매일 아침 집 근처 산에 올랐다. 돌아오면 오전 11시 경이다. 오후에는 내 나름 계획한 활동을 신나게 한다. 만약 아침 운동을 하지 않으면 며칠은 견디나 그 후로는 몸과 마음이 가라앉는다. 우울증도 생긴다. 그래서 매일 오전에는 등반을 했던 것이다.
등반을 하면 가장 많이 쓰는 부분은 바로 다리다. 그 중 무릎이 제일 힘이 든다. 한 걸음 할 때마다 무릎에 충격이 가해진다. 그때마다 무릎 사이의 연골판이 닳는다. 오래 전에 운동선수인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 연골은 충격만큼 닳는다. 연골은 한 번 닳으면 재생이 안 된다. 너무 달린다거나, 달리는 방법이 나쁘거나, 아스팔트 같은 딱딱한 바닥에서 뛰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걷거나 달릴 때 가능한 사뿐사뿐 걷거나 달린다. 마치 발에 용수철을 달아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럼 무릎 충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는 30년을 테니스를 쳤다. 스윙할 때 왼 무릎이 비틀린다. 이때 연골에 충격이 크다. 비틀림도 있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나이가 들어 60이 되니 왼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래서 테니스 치기를 그만두었다. 그 대신 걷거나 달리기를 하였다. 물론 사뿐사뿐 걷고 달렸다. 시큰거렸으나 설마 내 무릎의 연골에 큰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문제 삼지 않았다.
1년 전부터 세종에서 피클볼클럽을 만들어 관리하는 바람에 걷기와 달리기를 줄였다. 매일 아침 등반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격일제로 체육관에서 피클볼레슨을 하고 회원들을 관리하였다. 혹이여 무릎에 문제가 생길까? 과격한 게임을 하지 않고 주로 회원에게 레슨을 제공했다. 내가 직접 운동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아도 매우 재미있었고 좋았다.
최근 이렇게 조심하였다. 그러나 결국 2달 전부터 왼 무릎이 잘 펴지지 않고 펼 때 무릎에 뭔가 걸렸다. 과거 오랫동안 테니스와 달리기, 배낭여행, 그리고 등반을 무리하게 했을 모양이다. 근처 정형외과의원을 찾아 검사를 하였다. 소염약과 물리치료를 해보자는 의사의 권유에 한 달 받았다. 그러나 나아지지 않았다.
정밀검사가 필요했다. 의사소견서를 받아 세종충남대학병원에 가서 MRI을 찍은 후 의사를 만났다. ‘수술해야 합니다. 수술은 여기서 안 해도 됩니다’고 의사는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 주었다. 귀찮은 것일까? 그리고는 바쁜 척하고 외면했다. 나는 무안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여 일단 나왔다. 그리고 접수 직원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여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의사소견서와 MRI 자료를 받아 병원을 급히 떠났다. 가면서 문득 생각났다. 처음 다녔던 정형외과 의사를 만나보자. 그래! 바로 그곳으로 갔다. 그는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연골이 찢어져 너덜거리고 일부가 뼈 사이에 끼입니다. 서양 사람의 연골은 중앙이 빈 환형이나 한국 사람은 중앙이 비지 않은 환형이 많습니다. 그 중앙부분이 찢어지고 너덜거립니다. 그 부분을 제거하고 필요하다면 찢어진 곳을 정리하여 서로 이어주어야 합니다. 환자분의 연골은 많이 닳았습니다. 그래도 그 나이에 잘 관리하면 쓸 만합니다. 세종에는 MRI 찍는 곳이 3군데가 있는데 모두 관절을 전문으로 합니다. 참고 하세요”
나는 우선 세종충남대학병원을 선택하여 힘들게 MRI를 찍고 의사를 만났다. 매우 불친절했다. 실망했다. 다시 그곳에서 진료 예약을 하는데 2주가 소요되고 의사를 만나 수술 날짜를 잡으면 두세 달 후가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설명을 해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총 경비는 얼마나 들까요? 물어도 모두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지인에게 물어 보았다. 대학병원 의사나 직원 모두 월급을 받는 직원이다.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담당도 아닌데 굳이 알아도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그곳에 아는 의사가 있고 아는 행정 직원 있었다면 아마도 달랐을 것이다. 돈 있고 백 있는 사람은 다들 서울로 올라가서 진료 받고 수술한다. 한국에서 산 세월이 얼마인데, 그 정도는 눈치로 잘 알고 있다. 뼈에 관한 수술은 성급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를 해보고 안 되면 그때 수술을 해야 한다고 보통 어른들이 말한다. 그러나 여러 날 여러 가지를 종합해보니 수술이 정답이었다. 무릎 수술은 척추 수술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결정하고 보니 수술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당장 수술하고 싶었다. 3개의 관절전문병원 중의 하나인 ‘서00병원’을 찾았다. 개인 병원이라 매우 친절했고 환자로 혼잡했으나 접수도 바로 되었다.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의사를 만났다. 그도 역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상세히 상황과 수술방법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너덜거리는 연골을 잘라내고 가능한 파열된 연골은 살리기 위해서 서로 이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3-6개월 동안 움직이면 안 됩니다. 이는 MRI 결과를 보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관절 안을 눈으로 보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때 확인한 후 구체적인 수술방법을 결정합니다. MRI 자료는 참고가 될 뿐, 눈으로 보는 것이 제일 확실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미 수술을 하리라 하고 마음을 먹고 왔기에 결정이 쉬웠다. 바로 다음 주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제발 꿰맬 정도로 찢어지지 않았길 빌었다. 병원 홀에 걸린 담당의사의 경력을 보니 우리나라 최고의 관절전문의사였다. 됐다. 이 정도면 돼! 하고 안도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인 10월 21일 오후, 나는 병원에 입원했다. 큰 수술이 아니어서 보호자 사인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서약서 등 서류에 사인을 하고 기본 신체검사, 피검사, 뇨검사, X-ray, 초음파 검사를 하였다. 4인용 병실에서 팔에 수액을 달고 하루 밤을 보냈다. 내가 손수 해먹는 음식보다 병실에서 먹는 저녁은 생각 이상으로 맛있고 좋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뒤척이면서 늦게 자는가 싶더니 곧 아침이었다. 아침 9시, 의사 회진시간이었다. 나는 담당의사와 다시 만났다. 그는 오후 2시 정도에 수술한다고 하였다.
오후 2시 간호사의 안내로 나는 이동침대에 누웠다. 여기 간호사들의 반은 남자였다. 그들은 나를 실은 침대를 곧바로 수술실로 보냈다. 나는 두려웠다. 그냥 멍하고자 노력했다. 보호자도 없다. 나 혼자다. 수술 서약서도 내 사인으로만 가능했다. 볼 사람도 눈빛을 나눌 사람도 없다. 간단한 수술인데 뭘! 무릎 수술인데 뭘? 맞다. 남자가 그것 가지고 두렵기는. 억지로 계속 멍하고자 했다.
다시 내 몸은 수술대로 옮겨지고 척추마취주사가 등 뒤 내 척추를 찔렸다. 입에는 수면 마스크가 얹혔다. 조금 후 내 엉덩이는 공중에 뜨고 내 허벅지와 다리도 공중에 매달리는 기분이 되었다. 마치 애기가 엄마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자지만 자는 것 같지 않았다. 내 몸은 웅크린 채 공중에 떠 있고 내 앞의 광경이 눈으로 계속 들어왔다.
나는 웅크린 자세로 공중에 뒤집힌 채 떠 있다. 몸은 편안하고 마음도 조용하다. 황홀했다. 여기가 천국인가? 1시간이 경과 되고 내 몸은 병실로 옮겨졌다. 6시간이 경과 되면 마취가 다 풀린다. 천국에서 조금씩 현실로 돌아왔다. 근육이 많은 부분부터 감각이 살아났다. 다리 중앙부 생명 주머니가 가장 늦게 풀렸다. 6시간 동안 시체같이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정신은 말짱하고 상체는 자유웠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둘려보니 링거대가 머리 옆에 있었다. 조것이면 될 것 같았다. 손으로 링거를 거는 짝대기를 뽑았다. 손에 쥐고 이리저리 멀리 있는 물건을 집어 조달했다. 마치 낙시대처럼 말이다.
소변을 먼저 보라고 간호사의 권유했다. 그래 화장실에 가야지. 혼자 휠체어를 찾았다. 어렵게 올라탔다. 처음 운전해 보는 것이라 앞으로 가기는 어려웠다. 한 쪽 다리가 성해서 뒤로 가는 것이 쉬웠다. 겨우 소변기에 섰다. 여러 번 노력해 보았지만 실패했다. 사타구니 중앙 주머니를 만져보니 아직도 감각이 둔했다. 어쩔 수 없이 병실로 되돌아갔다.
수술 전 나는 수술 후 무통 주사를 거부했다. 마취에 회복되어 내 몸이 아프면 얼마나 아플까? 한 번 겪어 볼 생각이었다. 아픈 만큼 내 몸 관리를 더 잘하겠지. 이런 주사는 모두 비보험이다. 덤으로 돈도 아낄 수 있다. 마취가 완전히 풀리는 저녁 9시 40분이 되었다. 다시 화장실을 찾았다. 역시 쉽지 않았다. 방법을 바꾸었다. 서서 하지 않고 좌식에 앉아 보았다. 쉽게 소변을 볼 수 있었다. 앉으면 다리 근육이 완전히 풀리기 때문에 좌식이 효과가 있음을 알았다. 왜 수술 하루 전 음식과 물을 못 먹게 하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다.
병실에 돌아와서 다리 감각을 살폈다. 다 풀렸는데 수술 부위의 아픔은 없다. 진통제나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개복이 아니라 무릎에 구멍 2개를 뚫고 하는 관절경 수술이다. 무릎 사이를 강제로 벌렸고, 상처가 크지 않아도 당연 통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통증이 없으니 신기했다. 다행이었다. 간호사가 아프면 약을 주겠노라, 주사를 주겠노라 하였지만 아픔은 퇴원 할 때까지 줄곧 없었다. 필요없는 처방일 것이라 생각한 나의 믿음이 맞았다. 다음날 오전 9시 의사 회진시간이었다. 그는 기분 좋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연골 파열은 미미했습니다. 그래서 단지 튀어 나온 연골만을 제거했습니다. 오늘 깊스를 풀고 살짝 걸을 수 있으니 퇴원해도 됩니다.”
의사가 직접 눈으로 보니 연골 상태가 MRI 사진과 달랐던 것이다. ‘수술 후 최소 3개월 이상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수 있다’에서 ‘바로 살짝 걸을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지. 이 기회에 오른 무릎을 확인하고 싶었다. 의사에게 오른 무릎이 조금 시큰거린다고 하니 MRI를 권했다.
수술 후에는 수술 전에 했던 검사를 다시 진행한다. 수술 후 병균 침입이 없었는지 수술 결과는 어떤지 검사하는 것이다. 다시 피검사와 MRI를 하였다. 이때 오른 무릎 MRI를 찍었다. 무릎 하나 MRI 찍는데 30분이나 소요되니 양 무릎 검사는 1시간이 소요되었다. 중앙에 긴 굴이 있는 MRI다. 중앙 굴속에서 누워 가만히 있으니 졸렸다. 아주 큰 개복 수술이면 재검사가 필요할지는 모르나 무릎 국부 내시경수술에서 어제 수술하고 그 다음날 확인하는 검사가 과연 유효할까? MRI 비보험이고 한번에 40만원 경비가 든다. 내 생각으로는 이는 정말 필요없는 처방이다. 나에게는 큰 돈이다. 그런데 이마저 거부하기 어려웠다. 아프면 마음이 약해지고 비굴해진다. 의사와 직접 이야기하여야 하는 문제다. 이것으로 수술의사에게 밉상 보이고 싶지 않았다.
최종 결과를 보기 위하여 진료실에서 의사를 만났다. 다행이 오른 무릎은 초기 상태이니 조심하시고 왼 무릎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초기에 바로 수술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연골을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수술 결과는 오전에 들은 바와 같이 돌출된 부분만 제거 했다. 나이가 있으니 조심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운동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 구체적으로 더 물었다.
“운동으로 하는 걷기나 뛰기는 하지 마세요. 누구든 걷기와 달리기는 연골에 큰 충격을 주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그럼 무슨 운동이 좋아요?”
“수영은 좋습니다. 자전거 타기, 스쿼트, 무릎 충격이 없는 근력운동은 괜찮습니다. 필요하다면 평소 사뿐사뿐 걷는 것은 연골충격을 줄이기 때문에 좋습니다.”
연골충격이 없는 운동을 하라! 나는 충분히 이해를 하였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는 진료실에서 나왔다. 하루 더 입원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퇴원수속을 밟았다. 검사와 수술로 2박 3일 입원했다. 총 350만원이었다. 카드를 내었다. 병실비, 기본적인 약값, 식대, 기본 검사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보험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간단한 수술이다. 복잡한 수술은 그 경비가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개인 실손보험이 한두 개 있지만 나는 하나도 없다.
참으로 다행이다. 이 나이에 혼자 살면서 운동도 못하고 매일 혼자 집에 있거나 하루 종일 정적인 일만 하면 마음도 몸도 이미 저 세상으로 가고 있는 중이 된다. 걷고 달리기를 못해도 내 무릎에 맞는 운동을 얼마든지 있으니 다행이었다. 수술 전에는 이렇게 다짐했다. 다리를 못 쓰면 팔로 걸어 다니지 했었다. 이제 꼭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입원도 나 혼자, 퇴원도 나 혼자, 누구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만약 큰 수술이 되어 다리를 사용하지 못했더라면 병실에서 슬프지만 강한 마음으로 혼자 고군분투 했으리라. 나이가 들수록 아파도 주눅 들지 말아야 한다. 택시를 부를 예정이었지만 가방을 메고 트렁크를 끌고 도로로 나가 버스를 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쩔뚝거렸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버스에 기어 올라갔지만 난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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