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AGO SOFA 2018 - (5) 7일 동안 Frederictond에서
Saint John River, pen & black ink, 2018/10
택시는 공항에서 Fredericton 도심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강변(saint John River)을 따라 난 도로를 한참 달렸다. 내 목적지는 도시 중심에 있는 주립대학(UNB) 근처의 개인 주택(하우스)였다. 2017-2018년도 대학원 과정 4학기 동안 여기서 방 한 칸을 빌려 살면서 공부했었다. 이 집은 방이 4개가 있는데 모두 학생에게 임대를 주고 있다. 주인은 지하에 있는 방에 거주를 한다. 그래서 당연 빈 방 하나 정도는 있으려니 하고 무작정 왔던 것이다. 사실 오기 전에 수도 없이 집 주인에게 전화를 하였으나 통화를 하지 못했다. 막상 와 보니 세입자만 있고 주인은 없었다. 주인은 인근 도시에 근무하는 관계로 출타 중이었다. 이때 나는 핸드폰도 없었다. 집에 도착하여 세입자분에게 통화를 부탁하여 집주인과 통화를 하였다. 방이 없단다. 방 4개 모두 꽉 찼단다. 설마하고 왔더니 결국 잘 곳이 없었다.
어쩌라. 이 추운 캐나다의 밤에 큰 여행가방을 끌고 나갈 수는 없었다. 택시를 불려 바로 모텔로 향할 수도 없었다. 큰 돈을 마구 카드로 결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다운타운의 무료거주시설(시에서 운영하는 무료셀터)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어렵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관리인에게 여기 빈 침대가 있으면 하루라도 지낼 수 있도록 요청하였지만, 그는 빈 침대가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도 당장 잘 곳이 없었다. 내일은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내일 다시 와서 빈 침대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을 해 보라는 것이다. 거주자가 나가면 빈 침대가 생기니 그때 그때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무료거주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때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해 보았다. 내부가 어떠한지를 이때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정말 잘 때가 없고 정말 돈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내부를 실제로 보니 내가 과연 여기서 머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개인용 침대는 있었지만 많이 허술했고 침대는 큰 홀에 섬처럼 모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가 되어 있었다. 락커도 있었고 TV와 소파도 있었다. 아마도 개인의 사생활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내부에서 서로 간 알력이나 규율, 서열같은 것은 당연 없으리라. 경험을 해 보아야 그들을 이해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어쩔 수 없이 잠깐은 생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떨어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내가 직접 Student Loan으로 공부를 해 보고 렌트방에서 기거하면서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매일매일 오직 먼길을 걸어다녔다. 교통사고 이후 겨울 옷가지를 얻어서 입었다. 그리고 무료 셀터에서 잠까지 자 본다면... 이 정도면 최소한 그 사회와 그 나라의 기본과 바닥 구조시스템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엔 충분했다. 덕분에 작은 Loan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인생 공부도 많이 되었다.
이제 늦은 밤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걸어서 다시 그 집으로 되돌아 왔다. 걸어서 30분 이상이 소요 되었다. 왕복을 하였으니 많이 걸은 셈이다. 이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일단 하루만 여기 거실에서 자고 내일 나가겠노라고 하고 주인에게 요청하였다. 주인은 하루 자는데 $25이고, 다른 세입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으니 내일 그 돈을 두고 떠나라고 하였다.
다음 날 여기저기 온라인(kijiji.ca)으로 수소문을 하고 현장에도 가 보았으나 당장 6박을 할 곳이 없었다. 이 도시에는 호스텔이 없다. 모텔로 가야 하나? 그곳은 최소 하루에 $100를 주어야 한다. 대부분 다운타운과 멀어서 걸어다니기도 힘들다. 가끔 오는 버스나 혹은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여야 한다. 끼니도 문제였다. 매일 음식을 구입하여 먹어야 한다. 그럴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여기서 그냥 지내 보자는 것이었다.
주인이 없으니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도 지냈다. 방 4 개에 세입자가 4 명이다. 거실에 자니 들고날고 하면서 많이 소란스러웠다. 추웠으나 점퍼를 입고 자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마침 집을 관리를 하는 주인 친구가 나를 보며 반가이 맞아 주었다. 내가 이전에 여기서 머물 때 자주 만났던 분이었다. 사정 이야기를 하니 염려 말라고 하면서 집주인을 설득하여 주었다. 조용히 얌전히 머물고 하루 $25를 계산하는 조건이었다.
모텔에서 머무는 것이 좋지만 혼자 머문다는 것이 왠지 싫었다. 가족끼리 어울려 보내는 것이 아니면 어디서 잠을 자던 잠자는 것은 비슷하다. 푹 자면 되는 것이다. 짐 싸들고 모텔을 바로 가서 예약하면 되지만 돈도 마음도 상하게 되는 것이다. 남의 집이지만 작년 1년 동안 살았던 집이다. 낯설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작년 11월 교통사고를 당하여 이층방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을 때 몸 아픈 고통보다 배고파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은 곳도 바로 이 집에서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마음이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침부터 술에 젖어 다음날까지 밥풀하나 먹지 않고 오직 술만 퍼마신 기억도 바로 이집에서였다. 긴긴 겨울 이른 아침 완전무장하고 눈길을 걸어 다운타운으로 향하고 다시 저녁이 되면 눈보라를 뚫고 돌아온 곳도 바로 이집이었다. 매일매일 하루종일 학교에서 작업을 하고 돌아와 쉬는 곳도 바로 이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누구 한사람 대화할 사람도 없었지만 간혹 말을 걸어주는 이는 바로 이 집 주인이었다. 그래, 추억을 베개삼아 강아지처럼 거실 구석에 움크리고 자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잠만 자고 낮 시간에는 다운타운을 돌아 다닐텐데 말이다.
하루 이틀 이렇게 자보니 괜찮았다. 견딜 만했다. 아침은 빵 하나로 때우고 점심과 저녁은 다운타운의 무료급식소를 이용했다. 물론 걸어서 30분 이상 소용되지만 이 정도는 별 것이 아니었다. 공짜 밥을 먹고 다운타운과 대학에 걸어서 쉽게 갈 수가 있다. 다운타운에는 도서관과 커뮤니티 센타 등등 여러 편의시설이 있다. 만날 사람이나 처리해야 할 일도 다 다운타운에서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잠만 자고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들어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하루 종일 작업을 하였지만 지금은 그냥 돌아다니기만 한다. 그때보다 훨씬 쉽다. 역시 여기서 강아지 잠을 자더라도 여기에 머무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국에서 떠날 때는 10월 중순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여기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눈바람이 몰아쳤다. 보통 캐나다 동부는 11월 말이 되어야 첫눈을 볼 수가 있다. 따뜻한 가을의 언저리 한국에서 지내다 갑자기 눈보라를 맞으니 몸과 마음이 움쳐려졌다. 집도 내 집이 아닌 남의 집 거실에서 움크리며 자니 더 그랬다. 캐나다에서 10년을 생활했다. 항상 이맘 때 이른 겨울을 10번 이상을 경험했었다.
가지고 왔던 옷을 두겹 세겹 입고 방한 모자도 썼다. 오전에 작년 11월과 올해 4월 교통사고로 보상관계를 협의하기 위해서 변호사를 만나고, 오후에는 은행과 서비스센타(민원센타)에 들려 주소변경을 신청했다. 다음 날에는 다운타운 커뮤니티 센타에 들려 무료로 중고 방한 점퍼와 목도리를 구했다. 커무니티 센타는 상시 무료로 중고 의복을 구할 수 있으며 세탁과 목욕도 무료로 할 수 있는 곳이다.
3일째는 내가 다녔던 대학에 방문하여 교수들과 동료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미리 준비한 작은 선물을 교수들에게 드렸다. 몇개만 준비하였는데 만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모두에게 선물을 전해주지 못해서 섭섭했다. 다음 방문에는 여러가지 선물을 많이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학생 금융센타를 방문하여 4학기 동안 빌린 Loan에 대하여 상의하고 어떻게 상환하는지 물어 보았다. 다행이 나는 한국에 머물면서 2000만원을 만들 수 있었다. 총 원리금은 약 $15,000이었다. 날마다 이자가 더해지니 이왕 한꺼번에 상황하고 싶었다. 그들은 나에게 여러 정보와 함께 one-time Payment Form를 건네 주었다. 나는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정보를 입력하여 one-time Payment Form을 팩스로 신청하였다. 도서관에는 팩스기가 없었다. 도서관 직원의 도움으로 미국이나 캐나다는 FreeFax라는 온라인에 접속하면 무료로 팩스를 보낼 수 있었다.
이제 급한 것은 모두 해결하였다. 느긋하게 내 작품을 전속으로 전시해주는 캘러리(Gallery on Queen)를 찾았다. 캘러리 주인은 반가이 맞이 하여 주었다. 그 동안 팔린 대금으로 체크를 주었다. 이틀 모텔 값도 안되지만 내 근사한 작품을 팔은 돈을 받아 보니 기분만은 최상이었다. 고객이 내 작품과 이름을 인정하고 구입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캘러리 주인도 11월 초에 열리는 Chicago SOFA 2018에 참석한다고 하였다. 이때 여기 출신 예술가들이 만든 몇몇 작품이 출품된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고 나는 미안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핼리팩스 캘러리(Studio 21)를 통하여 Chicago SOFA 2018에 참석했다. 잘 아는 이 캘러리를 통했다면 쉽게 참석이 가능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한국에 머물렸기에 그런 정보가 전혀 없었다. 캘러리 주인에게 "다음부터는 전적으로 당신에게만 내 작품을 보내겠다. 정말 미안하다" 하고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11월 1일에서 4일까지 열리는 Chicago SOFA 2018 행사장에서 만나기를 약속했다.
다시 학교를 방문했다. 입구 홀에서 동료 후배들을 만났다. 그들은 2018 - 2019년 4학기 Graduated program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Graduated program 전용 작업장(Studio)에 나를 안내하였다. 새로 꾸민 작업장이었다. 한방에 10명 내외가 작업할 수 있는 최신의 작업장이었다. 아늑하였다. 모든 장비와 가구가 최신이었다. 나는 2017 - 2018년 4학기 Graduated program 동안 학부 학생들이 이용하는 작업 Studio를 사용했었다. 이런 전용 작업장이 새로 생기다니... 여기로 와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끔 꿈틀 거렸다.
"내년에 와서 작업을 해 볼까?"
"아니야, 생고생이야, 집도 돈도 없는 주제에 무슨 예술 타령인가. 이제 나이 60이 아니던가?"
학우들과 헤어지고 학교에서 나오면서 나는 수도 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 지우곤 했었다.
다운타운 인근 주택지, 밤에 눈이 왔다.
방문 기간 7일 중의 주말이었다. 이미 이곳에서 10년 이상을 살았었기에 특별히 가볼 곳은 없었다. 방문 기간 중 오후가 되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잘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강변으로 나와서 달리기와 스트레칭으로 운동을 하였다. 여행 중이라 하더라도 매일 일정한 시간에 운동을 하니 마음이 싱그러워지고 밤에 잠도 잘자게 되었다. 교통사고 이후 생긴 습관이었다. 강변 잔디에서 넓은 강물을 보고 달리고 있노라면 한국인지 캐나다인지 분간이 안되었다. 그러면서 하루 하루가 훌쩍 가버리는 것이었다. 여행 중이지만 환경만 조금 바뀐 생활의 연장이 되는 셈이었다. 거실 구석 소파 사이에서 잠을 자는 것도 이제는 별 문제가 없었다. 낮에 조금 운동을 한 덕분에 잠도 잘 자게 되었다.
이렇게 7일을 느긋하게 보냈다. 다시는 이곳에 올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다시는 못 올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혹이여 마지막일 수 있는 여기 생활을 의도적으로 즐겼다. 프레데릭톤에 남아 있었던 모든 물건을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 골라 두 개의 여행가방으로 꾸렸다. 화요일 오전 이곳을 떠나 공항을 향했다. 택시 안에서 멀어져가는 다운타운을 보고는 왠지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내가 10년을 살았던 곳이 아닌가. 다시 작은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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