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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하룻밤에 읽는 칭기즈 칸'을 읽고

Hi Yeon 2017. 7. 8. 14:02




하룻밤에 읽는 칭기즈 칸

 

김영진 편역, 도서출판 큰방(모든북), 1999년 초판

 

칭기즈 칸(Chingiz Khan, 몽골 제국 제1대 왕, ?1162~1227, 재위 1206~1227)은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역사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잔인하면서 가장 전술적인 인물이었다. 테무친('철인'이라는 뜻)이 칭기즈 칸(칭기즈는 '빛', 칸은 '왕'으로 칭기즈 칸은 '왕 중의 왕'이라는 뜻)이 된 때는  테무친의 나이 27세 때의 일이었다.


1227년 당시 65세, 그가 죽을 때, 그의 영토는 유럽, 남아시아, 서중국에까지 미쳤다. 그의 아들 오고타이(셋째 아들)에 이은 손자 쿠빌라이는 1270년 고려를 점령하였고 1279년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원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이때 몽고 제국의 영토는 최대가 되어었다. 대초원을 무대로 하여 뻗기 시작한 몽골 세력은 약 1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강한 나라로 군림하며 세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나는 칭기즈 칸에 대하여 영화와 책으로 여러 번 접했다. 왠일일까? 어느 날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읽고 둔 칭키즈 칸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만에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야기 위주가 아닌 역사 줄거리 형식이어서 읽기에 지루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는 조용히 몽고인과 칭기즈 칸의 특별함을 생각해 보았다. 그 특징들을 '최고의 기동성', '앞선 정보력', '개개인의 강력한 전투력', '치밀한 조직력', '전투의 신속 간결성', '권력의 중앙 집권' 등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의 집합체였다. 이러한 남다름은 오늘날에도 미국 유럽 등 강대국 국가에서 전술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항들이다.


우리를 생각해 본다. 요즈음 안에서는 우리는 '촛불이 대통령이다', 혹은 '국민이 대통령이다'라고 외친다. 밖을 보면 우리는 열강들의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한반도에 살고 있다. 1100년대 몽골에게 정복당한 나라들의 행태와 같다. 세계를 가장 넓게 정복한 몽골 제국, 그 특별함, 반드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들이다.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몽골 제국은 빠르게 한문화에 흡수동화되었다. 강력한 힘도 중요하지만 아울러 문화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

 

1. 테무친 본인 스스로가 강인한 체력과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또한 탁월한 무사였다.

2.  테무친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몽골 명문 부족인 키야트씨 족장이였다. 아버지가 살해되면서 어릴 때부터 스스로 가족을 보호하여야 했다.

3. 몽골에서는 다른 부족을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하였기에 전투는 생활 자체였다.

4. 야전에서 싸우고 이동하여하는 전쟁은 몽골 유목생활과 비슷한 형식이었다.

5. 몽골인의 말을 이용한 기동성은 획기적이었다. 말을 타면서 가벼운 칼을 휘두르고 작은 활을 쏘는 형식은 기동성과 더불어 매우 탁월했다. 마치 개인 소형 탱크를 타고 보병을 무찌르는 식이었다. 


6. 전쟁에는 보급 부대가 전체 규모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데 몽골 부대는 전부가 각자  전투 식량을 가진 기마 전투병이었다. 몽골인 주식인 육포은 오늘날 전투 식량 같은 것이었다.

7. 칭기즈 칸은 상대를 알 수 있는 정보 수집에 최우선을 두었다. 정보는 말의 기동성에 의하여 남보다 아주 빠르게 수집되었다. 적을 알고 전술이 만들었던 것이다.

8. 그는 상대의 장점과 문물을 바르게 받아들이고 그리고 몽골인에게 맞게 최적화시키면서 발전시켰다.

9. 그는 기술인, 공예인, 미술인, 건축인, 석공, 도공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고, 그들의 능력을 몽골 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10. 미리 항복하면 살려 주었지만, 항거하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살해하고 제거하였다. 씨를 말려 후한을  없앴던 것이다. 즉, 전쟁은 전쟁일 뿐이었다.


11. 많은 물자를 운반하면서 전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서 획득한 물자를 다음 전쟁에 잘 이용하였다. 정복지의 말은 기동성의 연속성을, 정복지의 식량은 전투력의 지속성을, 그리고 정복지의 여자는 전투 의지의 향상성을 잘 유지해 주었다.

12. 문자가 없었던 몽골인은 위구르를 정복할 때 칭기즈 칸이 위구르 문자를 몽골군에 보급시키면서부터 의사 전달의 획기적 발전이 이룩하게 되었다.

13. 용감하고 탁월한 몽골 정예 기마 부대는 전쟁 수행 중에는 큰 손실이 없었다. 죽거나 다치는 등 대부분의 손실은 일반 사병들(정복할 때 아군으로 편입된 항복한 적군 병사)이었다.

14. 몽골제국 상부조직은 가족, 씨족, 혹은 부족 형식이다. 중요한 사항은 부족장 회의인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결정하였으며 명령 계통은 보안 속에 신속 명확 탁월했다.

15. 점령지에서 획득한 재물과 여자는 공평하게 분배되었으며, 후계자(오고타이,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뿐만 아니라 모든 직위는 능력 위주로 발탁되었다.


16. 부인의 씨족이 항거하면 반드시 멸하지만 부인은 남자를 따른다. 그러나 모계사회였다. 남자는 가족을 보호하고(전쟁을 하고) 여자는 가족의 생계(후방과 물자)를 책임진다. 여자가 적에게 유린당했다 하더라도 돌아오면 당연 내 여자이다. 테무친의 아버지(예수게이)가 친정으로 가는 족장(메르키트족)의 딸(호엘룬, 임신중)을 훔쳤다. 그후 예수게이가 임신 중인 호엘룬과 결혼하였고, 그리고 태어난 아들이 테무친이다. 테무친의 큰 아들(주치)은 그의 첫 부인 부르테가 메르키트족에게 강탈되어 유린되었을 때 생긴 아들이었다. 칭기즈칸의 둘째 부인 쿨란은 셋째와 넷째 그리고 후궁들을 제치고 바로 둘째가 되었다. 여자 선택 기준은 첫째 강인함과 그리고 현명함, 그 다음으로 미모였던 것이다. 혹독한 자연과 부족간 투쟁에서 살아 남기(적자생존)를 위해서는 강인하고 현명한 산모의 역활(우성론)이 자연적으로 고려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