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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감상문-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부부, 다시 사랑하다(Love Cycles)'를 읽고

Hi Yeon 2016. 7. 10. 20:15

 

부부, 다시 사랑하다 (원제: Love Cycles, 저자: Linda Carroll, 2014) 이 책은 사랑의 거품이 빠진 사람들을 위한 관계 테라피이다. 린다 캐롤은 30년 이상을 커플 상담치료사로 활동해 온 심리치료사이다.
 

고국으로 돌아와서 지내니 편안하다. 하는 것 없이 밥 먹고 잠만 자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가게를 시작하였다. 일주일의 반만 가게를 지킨다. 나머지 시간에는 여유를 부릴 수가 있다. 그래도 판에 박힌 생활을 하니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대충 입고, 자고, 먹고, 걸어다니는 그런 작은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게나 열심히 하지, 그럴 형편이면 그 돈으로 차 한 대 빼서 옷 잘 입고 잘 먹고 살지 그런다. 그런 눈치 때문에 여행을 떠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살아가는 데 어디에 가치를 두는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별수 없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생각의 여행을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서고 사이를 지나 가다가 눈이 번쩍했다. 남녀심리에 관한 책 제목을 발견한 것이다. "부부, 다시 사랑하다"(Love Cycles, Linda Carroll, 2014, 정미나 옮김)가 그것이다. 나는 주저없이 얼른 뽑아 들고 읽기 시작하였다. 

소설 책처럼 쭉쭉 읽어 나가기에는 문장 하나하나가 심오하였다. 자주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많이 하였다. 며칠 동안 반절도 채 못 읽고는 가게 일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려 가방에 넣었다. 고속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틈나는 대로 천천히 읽어 나갔다. 그리고 목적지에 차가 도착할 때면 책을 접고는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세상은 다양하다. 그 다양한 세상에서 사람들도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인간들이 공통체와 자아를 왔다갔다 하며 살아간다. 자유민주적 세상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욕구는 커지고 그 만큼 행복의 잣대가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잘 살게 되는 만큼 자아실현이라는 욕망도 더 커진다. 그러나 다양성을 이해하고 알기에는 우리는 경험도, 지혜도, 과거의 고통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내 자유와 내 욕망만 따지니 우리는 더 서로 충돌하고 더 갈등한다. 

이민을 하여 캐나다에서 살아 보았다. 다름의 세상을 알게 되었다. 고국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송두리 채 흔들렸다. 뿌리까지 뽑힐 정도였다. 그때부터 세상에서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나는 조금씩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절대권력의 사회나 자유가 덜 보장된 사회에서는 다양성은 잘 활성화 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랬다. 이제는 풍요 속에서 우리는 자유와 민주를 당당하게 누린다. 당연히 사람들은 각자 자기 천성을 제각각 있는 대로, 생긴 대로 표출한다. 그만큼 공동체에서 서로 간에 충돌과 갈등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가난과 관습, 제도가 보호막이 되었다. 지금은 고삐 풀린 망나니이다.  다양성과 자유가 혼재되면 찬 기운과 더운 기운이 만드는 태풍이라는 것이 당연히 생긴다. 그리고 태풍이라는 혼란과 파괴를 겪은 후에야 고요가 찾아 온다. 자유는 스스로의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큰 굴곡없이 넘기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성숙이라는 방법밖에 없다. 오늘날 인간심리 문제에 관심이 많아지는 이유이다. 

 

오래 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심리학 측면에서 남녀 본성의 다름을 잘 설명했다. 반면, 오늘 읽은 "부부, 다시 사랑하다"는 남녀의 다름을 설명함과 동시에 다시 사랑하는 방법을 잘 제시했다는 생각이다. "부부, 다시 사랑하다"는  사랑의 거품이 빠진 사람들을 위한  테라피이다. 이 책은 꼭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어른과 젊은이, 부모와 자식, 기성세대와 현세대, 가진 자와 못 가진자 , 머문 자와 떠난 자, 그리고 돌아온 자와 남는 자 등등 다양한 인간 개개간의 갈등, 충돌, 다툼에서 사랑, 우정, 협력 등등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묘약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깊은 이해와 스스로의 실천을 위하여 책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1단계, 사랑의 로멘스가 시작되는 결합 단계

강력한 사랑의 묘약에 취해 불 타오르는 단계이다. 상대를 속속들이 마음에 드는 Soulmate로 느끼며 심지어 완벽한 이상형으로까지 여긴다. 상대를 보면 호르몬이 마구 솟는 느낌이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 해석하고 파트너가 나의 단 한사람이라는 환상이 가득하다.

사람은 두가지 본능이 있다. 다른 사람과 결합하고픈 열망과 여전히 독자적 인격체로 남으려는 욕망이다. 두 본능 모두 아주 중요하다. 아기와 엄마 사이의 유대와 같이 갓 결합한 연인들은 서로에게 몰두한다. 언젠가 엄마를 밀어내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듯, 우리도 결국에는 연인과 거리를 벌리며 자신의 독자적인 경계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당장은 죽어도 밀어내고 싶지않다. 오히려 결합한다. 두 본능은 문화, 민족, 종교, 교육, 계급, 인생목표에 따라 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현실과 아랑곳없이 노래, 영화, 동화, 소설 등 수많은 문화가 우리에게 이상적인 사랑이 일반적인 표준인 것처럼 여기도록 믿음을 심어준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사랑의 지속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나도 강하고 변하지 않으며 오래도록 지속되는 사랑은 노력해야만 가능하다. 그것도 한쪽만이 아닌 둘 다 어려운 노력에 동참해야만 한다. 처음부터 파트너 선택에서 현명했던 경우라면 노력의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그러나 선택을 잘하기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우리는 생화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특정 부류의 짝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자신과 다른 상대를 찾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기 전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가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단계, 의심과 부정의 단계

사랑하는 사람의 결점이 보이는 단계이다. 사랑의 효과가 미미해지고 파트너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과 씨름한다. 두 사람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게 되고, 결국 그 차이로 인하여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불거진다. 여기서 자신과 연인이 완전히 꼭 들어맞기 힘든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거부당하는 나는 상대가 친밀감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감지한다. 나를 밀어내는 상대의 차가운 태도에 나는 버림받는 느낌이 든다. 겁에 질린 나머지 상대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려 하지만 그런 내 시도에 상대는 오히려 더 도망치려 한다. 이렇게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세계관, 공유, 절약, 소비, 취미가 왜 나랑 이렇게 다른거야' 하는 의문이 자꾸 고개를 든다. 이런 상황에서 성욕까지 차이를, 당연히 다른 데, 느끼면 최악으로 치닫는다. 이때 위기감도 더 커진다.  

대부분은 차이를 다루는 요령도, 협력하는 요령도 잘 모른다. 대체로 대립하거나, 자신이 의견을 밀어붙이거나, 그냥 포기하고 만다. 문제를 회피하거나 기분을 맞추어주는 회피형, 입을 꾹 다물거나 연락을 끊거나 사라져 버리는 단절형, 우격다짐으로 이기려는 투사형, 모두 본능적인 대응이지만 모두 협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은 카펫으로 덮고 가려두는 식의 이런 대응은 마음 속에 앙금이 쌓이게 된다. 그러나 얼마쯤 지나 카펫이 울퉁불퉁하고 볼록해지면 여기에 걸려 넘어지는 횟수가 차츰 늘어난다. 그러나 카펫이 그렇게 불룩해지기까지 자기 자신도 공헌했다는 것을 좀처럼 의식하지 못한다. 이 단계에서 관계가 잘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스킬이 필요하다.

1, 자신의 욕구와 동기에 대하여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 
먼저 솔직한 마음으로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귀울어야 하며, 그런 다음 파트너에게 솔직히 다가가 파트너의 이야기에 성실히 귀 귀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른바 소통이라는 것은 해봐야 헛수고일 뿐이다.

2, 마음을 열고 들어주기
상대가 당신에게 서로의 관계에 대한 불만을 애기할 경우, 대체로 불만은 상대의 생각과 달리 두 사람의 관계보다는 자신과 관련이 더 많다. 따라서 당신이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으면 상대는 문제점에서 자신의 책임을 알지 못한다. 반면, 문제가 두 사람 관계와 더 관련이 된 경우인데,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좋게 꾸미려 한다면 상대, 관계 자체, 당신 자신,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보통 어느 정도 서로의 책임이 있게 마련이다. 단점없는 감성 지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의사소통 문제는 자신의 진심을 알리거나 자신의 감정을 이해시키거나 자기 식으로 밀어붙이려는 태도에 기인한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결과를 못 박지 말고 다른 결과도 허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는 헛수고가 되거나 자기는 왜 나처럼 생각할 수가 없을까? 라는 식의 식상한 입씨름으로 번질 수가 있다. 그리고 속마음을 충돌적으로 꺼내 놓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자칫 상처와 관계에 금을 줄 수가 있다. 특히 화가 날 때 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일단 상대가 애기를 성의껏 들어 주기 시작하면 두 사람은 주도권이나 자기 보호를 위한 다툼이 아닌 진정한 소통이 된다. 특히 의견이 많이 다를수록 더 그렇다.

불만의 소리를 듣는 당사자, 즉 비난에 대한 반응은 기질, 개인사, 자존심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위협이 감지될 때마다 그 위협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오래되고 원시적인 부분, 즉 '파충류의 뇌'라는 부분에 기록된다. 그리고 우리 몸은 위험을 경계시키고 싸움에 대비시키는 신경물질과 호르몬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래서 위험이 닥치면 이런 화학물질이 분비가 되고 현 상황에서 전체보다는 어떻게 하면 극복할까 라는 작은 부분만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렇게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능력은 줄어들고 자신이 옳다는 확신은 더욱 커진다. 그 유형으로는 얼어 붙는 유형, 도망치는 유형, 싸우는 유형을 들 수가 있다.

3,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협력 방법 터득하기
바람직한 결혼생활은 누가 더 관대한지를 겨루는 것과 같다.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어렵다. 관대함을 융내내며 연습하다 보면 마침내 감정도 같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나는 당신이 아니다. 일단 파트너와 자신이 서로 다른 두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자신의 관점 이외의 관점을 막연하게나마 지지할 수가 있다. 물론 여전히 실망감과 아픔, 심지어 분노까지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비로소 자신이 다리를 건너 파트너의 세계로 넘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분발되기도 한다. 파트너가 자신에게로 건너오길 요구하는 대신에 말이다. 

서로가 하나처럼 유대되어 있다고 해도 인간은 본래 독립된 존재다. 이런 양면성을 동시에 이해하는 능력(분화 능력이라 한다)이란 파트너와 가까워지면서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나 자신의 독립성과 개별성을 누리면서도 내 안에서 서로의 친밀성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다. 또한 파트너의 슬픔을 들으면서 슬픔을 느끼지 않고, 파트너의 기쁨을 인정하면서 질투나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에 대한 불만을 들으면서도 파트너의 생각이 틀렸다고 바로 잡아주거나 반박하거나 바꾸려 애쓰지 않는 능력이다. 한편, 협력이란 단순히 두 사람이 삶을 함께할 방법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각 파트너가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일구어 나갈 채비를 스스로 갖출 만큼 개인적 노력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4, 새로운 행동 취하기 
보통,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능적인 반응은 파트너가 필요로 하는 바와 반대인 경우가 많다. 다시말해 반본능적인 새로운 행동을 취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5, 관계에 양분주기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내 파트너를 대접해 주겠다는 황금률(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오 복음서 7장의 교훈)의 실행이다. 상대의 욕구가 자신의 욕구와 다르다고 해도 그 욕구에 관심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관계의 황금률, 즉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을 캐낼 수가 있다. 그것은 관계의 은행계좌에 온정을 적립하는 것이다. 특히 사랑의 첫단계에서는 그렇게 의식적으로 쌓는 예금은행이 필요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예금은 꼭 필요하다. 처음 시작 단계부터 관계에 양분을 주며 사랑의 예금계좌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온정을 차곡차곡 저축해 놓으면 문제가 생겼을 때 잔고가 빈 경우보다 상처와 고통에서 훨씬 더 빨리 회복할 수가 있다.

6, 자기 자신의 연료탱크 채워넣기 
양분을 주는 문제에 관해서라면 자신의 행복이라는 정원에 주는 양분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을 배려하기 위한 여유를 더 많이 가질수록 상대를 배려할 여유도 그만큼 더 생긴다. 상대가 옆에 있어 줄 수 없을 때는 혼자가 아닌 나 자신과 함께 함께하는 요령을 배우면 된다. 이런 능력은 관계 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기도 하다.

 

3단계, 환멸의 단계

서로의 차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애를 먹고 결국 의심과 부정을 넘는 환멸의 단계로 넘어간다. 힘겨루기, 원한품기,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마음 한편으로는 헌신적 관계에 계속 머무르길 갈망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절교를 갈망한다. 확실히 인간의 내면에는 두 개의 영혼이 필요하다. 바로 결합에 능한 영혼과 거리두기에 능한 영혼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먼저 자기 안의 두 영혼이 화평을 이룬 다음 상대 파트너와도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두 사랑의 공간을 일구어야 한다.

이때는 사랑의 첫단계와 같은 사랑의 묘약은 없다. 이제는 사랑의 마법의 효과가 아닌 자기 힘으로 타개하여야 한다. 첫번째 단계 때에만 해도 우리는 파트너의 가장 좋은 점들을 과장해서 생각했다. 그런데 세번째 단계에서는 "어쩌면 사람을 이렇게도 짜증나게 만들까!", "어이없을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자야!"라고 비난하면서 180도 돌변한다. 이때는 먼저 자신의 기울어진 마음을 이해한 다음, 더 균형잡힌 입장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목표에 이르려면 괴로운 시간을 견뎌낼 각오가 필요하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관심과 존중을 받아야 하며, 이것은 연인으로부터 관심과 존중을 받는 것보다 더 절실한 요구이다. 모든 관계 변화는 당신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초점을 파트너에서 자신으로 돌아와 관계의 정원에 양분을 주는 데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환멸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일곱 가지 일상적인 현상
 
따분함: 이것의 근원은 인간의 쾌감 갈망에 있다. 기쁨의 도파민은 기분이 들떠거나 흥분될 때 분비되며 도파민이 부족하면 균형을 잃는 느낌이 든다. 사랑의 세번째 단계로 넘어 올 때면 도파민이 듬뿍 분비되는 축복을 얻기가 힘들어진다. 따분함을 헤쳐 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신의 느낌을 파트너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삶의 일상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건전한 활기를 더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가 괜찮을지 고민해야 한다.
 
우울증: 이는 불행한 결혼이 주원인이다. 이전부터 앓아온 우울증이 결혼관계 문제에서 불겨지고 심화되기도 한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병을 치료할 때처럼 진단과 치료를 위하여 의료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배신: 마음 몰라주기와 매정한 마음으로부터 생긴다. 파트너가 정말로 어떤 감정 상태인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파트너에게 필요한 것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과 크게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나에게 아무리 좋은 것도 상대에게는 나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카펫: 세상에는 갈등이 없는 관계는 없다. 이 단계에서는 카펫이 심하게 울퉁불퉁해져 있다. 평평한 자리를 찾아 조심조심 다녀야 한다. 가로 질려 다가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무엇이든 생각과 느낌을 쏟아내는 것은 카펫을 평평하게 펴는 작업에는 효과적이지 않다. 불편한 애기도 들어주고 자신의 책임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하고, 말할 때는 파트너가 잘 들어줄 만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상당한 용기와 인내력, 자의식, 연습이 필요하다.
 
유대감 상실: 관계를 이어 가다 보면, 분노하거나 상처를 받거나 격분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유대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를 항상 열어 둔다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앞으로 나갈 길을 찾게 된다.
 
정당화된 분노: 파트너가 저지른 실수를 기회삼아 그 동안 쌓아 두었던 온갖 불만과 분노의 응어리를 이때다 하고 분출하는 것이다.
 
짜증스러운 기분: 공작같이 화려한 날이 있으면 깃틀 총채 같은 날도 있다. 공작 시절에는 모든 것이 잘 넘어간다. 반면 깃털 총채 시절이 오면 어떤 일도 쉽지 않다. 괜히 짜증스러워지기도 한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짜증스러운 기분에 항복한다면 더러 심각한 결과를 안게 된다. 즉 배우자나 가족을 길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보다 더 못하게 대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4단계, 결단의 단계

갈림길에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결혼생활 그만두기, 같이 살되 불행한 결혼생활 이어가기, 평행선 같은 생활 이어가기, 관계변화를 위해 노력하기 등등 하나의 선택을 하여야 할 시점이다. 차이가 타협 불가능해 보여서 더 이상은 똑같은 문제를 놓고 헛된 씨름을 못할 지경이다. 이때쯤 아주 지쳐 있다. 파트너와 그런 고달픈 시간을 걸어온 것이 너무 오래되어 그럴 만도 하다. 그것이 수 년째이거나 기분상 수 년처럼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쨌던 실망과 이가 갈리는 분노의 고비를 너무 여러 번 어렵사리 견뎌내다 보니 이제는 환멸을 지나 철저한 절망감에 빠진다.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아닌 한, 당장 상황을 바꾸고 싶은 바람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어쩌다 현제의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이해될 때까지만이라도 행동을 미루는 편이 훨씬 똑똑한 처신이다. 

우리는 별 노력없이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질 때는 할 일이 없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문제가 생기면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멸의 단계에서는 그냥 사랑에 빠져 나오면 된다. 반면 이때는 할 일이 많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선택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놓고 어느 정도 양면가치를 느낀다. 관계를 지속하려니 도저히 안될 것 같고 헤어지려니 마음이 더 안 좋다. 그러다 차츰 머리가 돌 지경이 된다. 이때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을 내리면 안된다. 답이 분명해질 때까지 그 딜래마를 끌어 안아야 한다. 20살의 사랑 우정과 49살인 지금 필요한 사랑 우정은 서로 종류가 다르다. 자신의 불만족을 관계 탓으로 돌리기 보다 내면의 진정한 탐구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파트너와 계속 가기로 했던 아니든 말이다.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지 않은 채 관계를 정리할 경우 또 다시 비슷한 사람을 골라 똑 같은 문제를 반복하기 쉽다. 놓아 준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서로가 관계를 떠날 때 슬픔을 느끼고 분노와 비난의 감정이 생기다. 분노와 비난은 더 큰 고통이 되어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내면의 작업이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자신의 영혼을 책임지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가 믿을 건 우리 내면에 양분을 주며 내면을 단련하는 것이다.

평행적인 삶은 꼭 공허한 것만은 아니다. 두 사람이 기꺼이 그런 파트너싶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지 방식을 넓힌다면 그런 타협속에서도 안정과 지지를 느낄 수 있다. 상호존중, 신의, 개인적 가치, 종교적 신념, 또는 단순히 갈라서는 것보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로울 것 같다는 이유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지속이 잘 되려면 서로의 욕구와 기대가 다르더라도 타협을 통한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괜찮은 결혼이나 파트너싶이라는 것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뭔가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대로 괜찮은 파트너싶은 차가운 침묵이나 원망에 젖어 있는 파트너싶이 아니다. 직감이 떠나라는 메세지를 보내오거나 집안 분위기에서 적대적이고 무정한 바람이 쌩쌩 느껴지는 그런 파트너싶도 아니다.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떠나는 편이 낫다. 차라리 혼자 살면서 혼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요령을 발견하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나을 수가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결혼생활에서 어느 정도는 평행적인 삶을 산다. 사실 약간의 거리두기는 유익하고 건전하다. 결혼생활 속에서 서로 떨어져 보내는 시간은 개인적 성장을 가능케 해줄 뿐만 아니라 채우지 못한 기대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해준다. 파트너와 함께는 아니지만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도를 서서히 높여 나갈 수 있다.

계속 가자면 새로운 차원의 유대를 만들어 주는 파트너싶이 필요하다. 그러면 좋은 커플로 거듭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의 그 환상적인 결합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현실과 가능성 모두를 끌어 안는 그런 새롭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한번 잃어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가능성을 회복하여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는 있다. 이전의 결혼생활은 끝났다. 새로운 결혼생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혼생활의 구제 노력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치 않다. 그런 의도로 다가가면 마음 깊은 곳의 솔직한 공감에서 멀어지기 쉽다. 화해하는 데 너무 집중하다보면 상대가 또다시 실망하거나 분노할까 봐 서로 진실을 털어 놓지 못한다.

파트너와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보기만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다. 이런 배움은 계속하든 혼자하든 간에 정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점에서 다소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두번째로 필요한 노력은 우리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즉 자신의 패턴을 살펴 보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는 패턴과 유대 패턴 모두를 파트너싶을 이끄는 원동력의 일부분이라는 관점에서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내력 또한 탐색해야 하는 데, 이때는 감정전개와 현재의 행동에 미친 가족의 영향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세번째는 관계 속에서의 여행이다. 여기서는 과거의 관계. 현재의 관계, 잠재적 관계 모두 포함된다.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앞날이 기대되고, 그 단점과 장점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 보아야 한다.

적극적인 성생활은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섯 쌍 중 한 쌍은 완전히 포기 상태로 추정된다. 서로 힘겨루기, 육아 피로, 테스토스테론 분비의 나이에 따른 자연적 감소, 건강 등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 주된 불만거리는 성욕차이다. "같이 자는 횟수가 어떻게 되죠?"란 물음에 젊은 부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거의 안 해요. 1주일에 3번쯤요." 상대의 말은 확 다르다. "지겹도록 하죠. 1주일에 3번이나 하니까요." 성욕의 타이밍과 횟수, 달궈지는 시간, 등등 속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 어쩐지 잘못된 만남이라고 확신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것들은 당연한 생리적인 문제이지만 잘 안 맞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애정이 식었다는 확신으로 발전한다. 결국 단절이 되고 불화가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성생활의 기준은 책, TV, 영화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무장된다. 그래서 무작위로 사람을 세워 놓고 물어 보면 그 중 절반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런 황당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표준으로 받아 들이면서 성적으로 활기를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즉 그런대로 괜찮은 섹스라 하더라도 C라는 성적표가 되고 만다.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잠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인간적 자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똑 같은 사람과 30년을 살다보면 정말 지겨워질 만도 하다. 과대 광고를 잊어버린 채 느긋한 기준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면 파트너에게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나이에 따른 섹스의 욕구와 횟수는 줄어들지만 그렇게 늦은 노년에도 열정의 불이 붙을 수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적 활동성를 지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개의 대립적 충동을 지닌 채 살아간다. 결합하려는 충동과 독립하려는 충동이다. 이 두 충동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두 충동을 조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혼자 있을 때조차 파트너와 깊이 유대되는 동시에 여전히 온전한 나를 느낄 수 있다. 자아감이 견고할수록 파트너와 차이를 더 잘 인정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좌절감 속에서 왜 자기는 나랑 다른데? 라고 물을 일도 없어진다. 파트너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으로 온전한 인격체임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런 독자성의 인식과 인정을 분화라 한다. 커플이든 솔로이든 간에 우리는 누구나 세상에 홀로 나가고, 홀로 떠나며, 혼자만의 자기 성찰을 마친 뒤 수많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자기 행동은 자기 혼자만의 책임이다. 자기의 삶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자신의 삶에 명예를 줄 기반을 우리 내면에 쌓아 두어야 한다.

결단의 단계에서 다음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함으로서 우리는 점차 전인적이고 자기실현적인 사람으로 발전되고, 또한  다른 한 사람에게 성숙하고 관대한 파트너가 되어 줄 준비가 된 사람으로 발전한다.

과거에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가정은 관계를 처음 배우는 곳이다. 가족은 정서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마음에서 애착이 가는 특정 틀을 발견하는 것도 유년기 때이다. 따라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족의 내력과 어린 시절의 생활은 우리의 성격, 감수성, 장점과 약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우리의 근원을 알려주며 우리의 본능과 심리를 이해하게 해준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 삶은 어떤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 에너지와 돈을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보상받고 있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에게 맞는가? 내 열정은 무엇인가? 나는 죽을 때 무엇을 남길까? 이와 같이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면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안다.

앞으로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손을 떼야 할 순간은 언제일까? 손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순간은 언제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앞으로 전진하게 해줄 만한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질문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변화를 생각하고 인간으로서 의미찾기를 할 기회를 준다.

Thomas Merton의 말이다. "사람은 일생동안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고 오르다 꼭대기에 다 이르고 나서야 그 사다리가 잘못된 벽에 기대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실제로 삶의 초반에 내리는 중대한 결정들은 보호자나 권위자에 대한 저항이나 순종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Merton이 말한 사다리의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그곳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던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위 두 질문, '과거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 솔직히 대답하고 나서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할 때, 내 재능은?, 내 가슴이 원하는 것은? 을 따져 볼만하다.


5단계, 진심을 다하는 사랑 단계 

모든 커플이 진심을 다하는 사랑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단계의 지향목표는 첫번째 단계에 느꼈던 기쁨을 되찾되 아무 노력도 없이도 마음을 열고 너그러워지게 해주었던 그 사랑의 묘약에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되찾는 일이다. 처음의 그 마법같은 순간을 어느 정도라도 다시 찾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하나, 새로운 파트너싶을 세우는 것뿐이다. 그것은 진심으로 다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린 파트너싶이어야 한다. 상대를 고치거나 바꾸려는 마음, 또는 대단하고 멋진 사람으로 꾸미려는 마음을 버린 채 상대를 아끼고 배려해 주는 것이다. 커플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가 다 그렇다.

진심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있다. 

1, 상호 의존이라는 덫이다. 이는 상대에게 맞춰 주기 위해서 자신의 경계선을 변경하거나 상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자신의 진심을 부정하거나, 상대가 화낼까 봐 자신의 고통을 숨기는 식으로 상대를 통제하는 것이다. 상호 의존적이지 않는 경우를 보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구분하되 그외는 기꺼이 파트너와 협력한다. 나와 상대는 각자 유대의 재능이 서로 다른 독자적 인격체라는 점을 인정한다. 내 자존심, 안정감, 행복을 관계 변화에만 전적으로 목메이지 않으면서 내 자신의 내면을 굳건히 한다. 하지만 최대한 마음을 열고 자신을 노출시킨다. 자신의 노출은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약점 노출이 되나,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는 약점 노출이라는 위험 감수가 파트너에게나 자신에게나 보다 진심을 다하게 해준다.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은 진심을 다하기 위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2, 사랑 중독이다. 사랑 중독은 공상적 사랑을 향한 끌림이다. 사랑 초기의 마법과 같은 로멘스이다. 로멘틱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충동이다.

3, 닫힌 마음이다. 우리는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마음을 닫아 버리곤 한다. 그러나 예전의 관계에서 겪은 슬픔, 그리고 그 후의 치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새로운 관계에 진심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파트너와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필요한 내면의 노력 다음으로 다시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다시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진정한 마음으로 연결해 주는 서로 간의 다리를 지어야 한다.  다리 놓기 방법으로는 1-스스로 자존감을 살리고 높이기, 2-관대함을 상대에게 배풀기, 3-쾌할함으로 다리를 돋우기, 4-현재를 즐기기, 5-웃음이 있다. 

4, 반쪽 마음의 사랑이다. 마음이 눈먼 경우는 반쪽 마음만으로 사랑하기 쉬우며 자기도취 역시 파트너의 욕구에 마음을 반만 열어 주기 쉽다. 그 결과 파트너도 반쪽 마음으로만 사랑한다. 진심을 다하는 사랑은 파트너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소신을 따르도록 해줘야 한다. 파트너를 사랑한다면 나는 강아지를 싫어하여도 그녀가 좋아하는 강아지까지 무척이나 사랑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 진심을 다해 사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벽에는 개인사가 있다. 어린 시절에 대해 거짓으로 꾸미거나 일부분만 편향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남들에게 왜곡된 자신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점점 그럴듯하게 보강시킨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단련, 집중, 끈기, 신뢰, 나르시시즘의 극복이 필요하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다. 진심 다하기라는 산을 오를 때는 가르침과 영감을 불어넣어 줄 만한 스승과 룰 모델을 찾으면 좋다. What would Jesus do? 혹은 부처님이라면, 아인슈타인이라면, 성 프란치스코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런 질문은 본능이 얼어붙거나 도망치거나 싸우라고 명령할 때 특히 도움이 많이 된다. 우리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달아나고 싶은 욕망"과 그 안에 "머물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타협이 필요 없을 때는 연민을 갖고 관대해지기 쉽다. 여기서 "산꼭대기에서는 성자가 되기 쉽다"라는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영적 스승으로 여기는 위인은 대다수 싱글이기 때문이다. 

진심을 다하는 관계에서는 먼저 자신이 내적으로 성장하여야 하며, 그 다음에는 외적 성장을 위하여 손을 내밀어 상대를 받아 들이고 양보해 주며 상대를 우리의 파트너이자 자신의 권리를 가진 독자적인 인격체로 배려해 주어야 한다. 먼저 나를 성장시키고, 그리고 상대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 시점, 한 계절에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번 계절에는 흔들릴 수가 있다. 변화와 비영속성 속에서 완전함을 지키는 노력이 계속 필요하다

진심을 다해 사랑하다 보면 초반의 로맨틱한 단계에서 느꼈던 그런 극도의 유대감을 가끔씩 느끼게 된다. 하지만 첫번째 단계의 사랑과 다섯번째의 사랑은 그 차원이 다르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못 할 일 없다."는 식의 필사적인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은 충분하다는 깊은 인식에 따라 탄탄한 기반을 토대로 나 자신을 상대에게 연장시키는 식이다. 

진심을 다하는 사랑에는 경계선도 잘 그어져 있다. 내가 끝나는 선과 당신이 시작하는 선, 상대의 요구에 Yes뿐만 아니라 No라고 말할 수 있는 선이다. 우리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므로 우리의 한계 자체는 서로서로를 가장 근본적으로 유대시켜 준다. 완벽한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을 완전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움으로써 진심을 다하게 된다.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불완전함을 수용해 준다면, 그 자체가 우리가 여전히 온전하고 사랑할 가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느껴야 한다. 게다가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쾌할함, 현재를 즐길 줄 아는 능력, 유머도 또한 중요하다.

진심을 다하는 경지에 완전히 이르러 그 경지에 계속 머물면 좋겠지만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단지 중간 중간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 자리에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을 뿐이다. 사랑은 실천이며, 관계는 유익한 경험이다. 초반에 느꼈던 사랑의 기대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아는 독자적이고 독립적이면서, 마음은 열리고 배려있는 그런 자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것은 평생에 걸쳐 걸어가야 하는 여정이자, 진심을 다하는 사랑의 본질이다. Andrew

위의 글은 '부부, 다시 사랑하다' (원제: Love Cycles, 저자: Linda Carroll, 2014)를 읽고 그 내용을 인용, 요약, 재구성하였으며, 중간 중간 느낌을 추가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