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05 황리장길의 추억
시외버스를 타고 경주로 향했다. 버스에 내려 그녀가 말한 호텔에 들어서니 호텔 테라스에서 그녀가 커피 테이블에 앉아 ‘나야 나’ 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붉은 조명이 어둑컴컴한 테라스를 밝히고 있었고, 여름 밤바람이 시원스럽게 불었다. 긴 머리의 둥근 얼굴형 미인이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마치 내가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40년 전의 일었다. 나는 그때 시골에서 취업공부를 하고 있었다. 호텔 근처도 가보지 못한 놈이었다. 무지하게 고급이고 비싼 것이 호텔이었다. 갈 일도 없었다. 타향에서 꼭 자야 할 경우 허름한 여인숙이 제격이었다. 가끔 역사에서 밤을 새웠던 놈이었다.
내 주머니에는 지금 한 푼의 돈도 없었다. 그런 놈이 호텔에 들어서니 기가 죽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나의 처지를 잘 알고 있으리라. 그녀가 다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난 그때 시골에서 공부하면서 다방 주방에서 알바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다방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방에서 손님 접대를 한다거나 커피 배달 일을 하였다. 그들이 도시에서 먼 시골 다방으로 일하러 오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돈 때문이었다.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보통 빚이 있다. 다방 주인으로부터 일하는 조건으로 한 달 월급을 미리 먼저 받는다. 받은 돈으로 빚을 갚고 남는 돈은 옷과 화장품이나 유흥비로 다 써버린다. 돈이 다 떨어지면 그때 어쩔 수 없이 일하러 간다. 그런 사연들이 모인 곳이 바로 시골 다방이었다.
그들은 한두 달 일하다 돈이 좀 생기면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제 멋대로 놀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선수금을 받고 ‘애고 내 팔자야’ 하면서 일을 하러 또 간다. 애를 써봐야 내 신세 그 모양이지. 까짓것 오늘 즐기자는 것이다.
그녀의 미모는 정말 최고였다. 동네방네 남정네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녀 때문에 팔리는 커피양은 엄청 많았다. 손님은 그녀에게 밥 싸주고 술 싸주었다. 그녀가 배달하는 조건으로 혼자 10잔 20잔을 시키는 놈들도 있었다.
다방은 프로들이 일하는 세계인가? 그녀는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밤 12시까지 일한다. 다방 가게를 정리하면 겨우 새벽 1시에 누울 수 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뺑뺑이를 돈다. 휴일도 없이 한두 달 떠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도 그녀는 예쁜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말도 매우 사냥했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아가씨들은 한 곳에 오래 일을 하지 않는다. 돈이 손에 쥐어지면 그냥 가버린다. 어느 날 그녀는 보따리를 싸고 다방을 나설 때 내 손에 작은 쪽지를 쥐어주었다. 삐뚤삐뚤 적은 암호 같은 글이지만 언제 어딘지는 알 수 있었다.
경주가 관광도시로 이름이 나자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 주위에는 호텔과 모텔, 찻집, 음식점이 많이 성업했다. 그때는 경주역도 있었지만 주로 여행객들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이용하였다. 당연 버스터미널 주변이 유흥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철도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늘고 자가용이 보급되자 경주 터미널 지역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근 관광객들이 황리단길 같은 경주 시내를 많이 찾으면서 다시 이 지역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 와보니 그 옛날과 같이 지천에 깔린 것이 호텔이고 모텔이었다. 음식점도 많이 보였다. 40년 전에는 이 지역이 어마어마하게 보였는데 지금 보니 해외에서도 많이 알려진 경주치고는 이곳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봄여름가을에는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겨울에는 한산한 모습이다.
관광지는 추억을 만들어 주면 사람들은 다시 찾는다. 경주에서 가장 매력적인 나의 추억은 그녀와 함께 한 경주터미널 지역이었다. 오늘 다시 이곳을 걸어본다. 겨울바람이 매섭다. 빰모자를 하고 목도리와 두툼한 코트를 입었다. 밤거리의 홍등 빛이 눈동자에 맺힌다. 추억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그때의 추억이 오늘 재현되는가?
그때와 다르게 오늘 내가 그녀를 불렸다. 야놀자로 예약한 호텔방은 7,000원 할인행사로 일박에 38,000원이었다. 호텔 옆 건물에는 노래방도 있었다. 시간당 30,000원에 노래를 신나게 뽑았다. 이때는 근사한 이름난 맛집 식당에서 분위기를 잡아야 제격이나 나는 건너편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콜라 맛은 최고였다.
작년 여름 나는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문득 그분이 생각났다. 나이가 느긋하신 미국에서 오신 한국 분이다. 나는 경주에 오면 가끔 다인실인 호스텔에서 묵곤 했다. 다인실을 예약하고 보니 여기 근처 한진장 여관 호스텔이었다.
한진장 호스텔에 들러니 나이든 노인분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내부는 영어로 된 딱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외국인만 받는 호스텔이었다. 욕실도 없는 방은 허름했다. 마치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캐나다에 있었다고 하니 노인은 미국에 수십 년 살았다고 하면서 1시간 이상을 나를 붙들고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 여관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것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쩔 수 없이 이것을 맡았다고 했다. 40년 전의 공동욕실이 있는 여관이다. 새로이 짓거나 고칠 수 없어 옛날 시설 그대로 하여 호스텔로 이용하고 있다. 성수기에 싼 맛에 외국인들이 찾는가? 노인분이 영어가 유창하여 언어가 소통이 되어서 찾는가? 주로 저렴하게 숙박을 원하는 외국인이 가끔 이용하는 것 같았다.
땅 값은 제법 가니 팔아 가족이 있는 미국에 돌아가든가, 아니면 그 돈으로 한국에서 풍요롭게 사는 것이 좋을 텐데. 혼자 끼니 해결하면서 가끔 오는 손님 때문에 추리닝 차림에 흰머리 날리면서 노년에 잠깐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카운터를 지켜야 하나? 그분의 나이는 70이 넘어 보였다.
지금도 그분이 계시는지? 호스텔월드 닷컴으로 검색을 해보니 나오지 않는다. 문을 닫고 여행 중인가? 미국 갔나? 아니면 카운터를 비우고 돌아다니는가? 특별한 주인이었다. 나이 들은 미국인이고 한국인이다. 한물간 여관 빌딩을 힘들게 등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남긴 건물이어서 그런가? 추억의 건물이어서 그런가? 건물에서 풍기는 느낌은 특별하여 그 모습만 보아도 내 가슴이 싸 하다. 그분에게도 그래서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가? 내가 오늘 추억에 잠겨 여기에서 돌아다니듯 그분도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여관 빌딩을 홀로 지키고 있는가?
요즈음은 시내 관광이 대세이다. 경주에는 ‘황리단길’이 있다. 경주 대표적인 관광 거리이다. 반면 여기 이 지역은 버스터미널에 가까워 관광객들이 머무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 많은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모여 있다. 이렇게 된 지가 벌써 반백년이 넘었다. 여기서 황리단길은 걸어서 10분 거리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터미널에서 내려 여기서 묵으면서 걸어서 황리단길로 이동하여 관광한다.
관광객들이 머무는 이 지역을 나는 “황리장길”이라 이름을 붙여본다. 황리단길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길이다. 관광객에게는 이 길은 추억의 길이 된다. 황리단길이 이렇게 유명하게 되었듯이 이 지역은 경주 황리장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게 되었으면 한다. 그럼 나도 그분도 가슴에 서린 추억을 “황리장길의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하루를 보내는 나의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60210 아버지의 재산 (1) | 2026.02.10 |
|---|---|
| 60208 천박한 꼰대들이 빈예서를 울렸다 (0) | 2026.02.08 |
| 60201 동대구역에서 일본 철도역을 생각하다 (0) | 2026.02.01 |
| 60130 바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나의 서버는 무엇일까 (0) | 2026.01.30 |
| 60128 봄이 오면 가지러 가겠습니다 (0) | 2026.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