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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07 공간구성에서 본 나의 종교관 이야기

Hi Yeon 2025. 6. 7. 15:31

250607 공간구성에서 본 나의 종교관 이야기

 

젊었을 때 불교에 심취했었다. 대학생 때에는 불교학생회에 가입하여 전국의 여러 사찰을 돌아다녔다. 그때는 종교에 대한 뚜렷한 심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학교 생활에서 내 눈에 가장 먼저 그리고 우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생각나는 이미지는 저녁노을에 어스름히 보이는 전각 옆의 석등이다.

 

군대를 갔다 오고 복학하였을 때 목사인 사촌의 권유로 서울 큰 교회를 다녔다. 그때는 어디 사귈 사람이 없나 했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이 교회 규모가 어마어마했다는 것과 특별한 이름의 충현교회였다. 물론 목사님의 설교가 감동적이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 후로 잠깐 한 여자를 사귈 때 성당에 갔었다. 그 여자가 성당을 다녔기 때문이다. 그때 혜화동 성당 석조건물이 생각난다. 혜화동 언덕 입구에 고고히 서 있는 석조건물의 이미지는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다녔던 대학은 공자를 모시는 유교 학교였다. 본의 아니게 교양과목으로 유학을 배웠다. 생각나는 것은 인의예지신과 학교 입구 공자 위폐를 모시는 대성전과 교실 명륜당이다.

 

이는 내가 실제 겪은 본 종교이다. 그런데 머리로만 알고 있는 종교가 하나 더 있다. 이슬람이다. 이슬람은 내가 겪어 보지는 못했다. 다만 중동 지역 여행 중 모스크를 여러 번 보았고 직접 그 안에 발을 씻고 들어가서 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나는 세계적으로 존재감이 있는 불교, 기독교(신교, 정교), 유교, 그리고 이슬람을 나름 경험을 했다. 공부하고 겪어 봐도 그것은 코끼리 다리 만지기다. 이렇게 경험해서 어찌 제대로 그 이론과 개념을 이해하겠나만은 건축학 개념으로는 나름 정리된 생각은 있다.

 

건축설계를 할 때였다. 성당은 어떻게 설계하지? 교회는? 사찰은? 그럼 모스크는? 이론과 개념을 공부하고 이해를 해도 막상 설계를 하려면 머리 속이 텅 빈다. 고민 끝에 하나의 안을 생각해 낸다고 해도 본질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실제 내가 교인이라 생각하고 한번 들어가서 며칠 체험을 해보는 것이다. 그럼, 기본적인 개념이 생긴다.

 

성당은 크고 복잡한 제단을 전면에 두고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 교회는 전면에 단이 있는 강당이다. 마치 큰 강의실 같은 형식이다. 절은 건물 중앙에 인물상만 있고 그 앞에서 참선을 한다. 유교는 사자 명폐가 있는 건물과 교육관이 있다. 모스크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다.

 

간단히 하면, 성당은 제를 지내는 제당, 교회는 모임을 갖는 회당, 절은 참선당, 유교는 교육당, 모스크는 기도당이다. 카톨릭은 제례, 기독교는 모임, 절은 수련, 유교는 교육, 이슬람은 기도가 중심임을 각각의 종교 건축 공간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제 참가해 보면 성당에서는 긴 시간 동안 여러 절차가 예법에 따라 진행되고, 교회에서는 설교 시간이 길다. 유교에서는 성인 명폐를 모시며 명륜당에서는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절에서는 부처상 앞에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이슬람은 매일 규칙적 기도를 중심으로 삼는다.

 

과거 우리 집은 맏이가 사는 큰집이었다. 그래서 매월 제사가 있었다. 그때 모든 친척들이 당연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는 어릴 적부터 매월 보았던 광경이다. 제단을 차리고 규정된 절차에 따라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참가한 모든 분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담소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차와 모임의 비중이 절반씩 차지하는 것 같았다. 내가 젊었을 때는 간단히 차려서 하면 좋지 하고 우겨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에는 절차와 모임이 절반 정도 되었으니 매우 균형적이라 생각된다. 절차와 실용성을 겸비한 조상의 지혜다. 요즈음은 간단히 차려서 절하고 그리고 담소하면서 음식을 먹는다. 이때 모임의 시간이 더 많다. 참으로 좋은 방향이다. 그러나 아예 없애버리는 경우도 대세다.

 

대중의 요구에 따라 기독교는 절차보다는 모임을 중시하면서 변화되어 갔다. 로마의 중앙집권에서 인본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도 그렇게 탄생했다. 절차를 중히 여기는 문화는 아마도 중앙집권제에서 유용하며 이 또한 동양사회의 특징이다.

 

불교는 절차도 있지만 자기 수련에 중점을 둔 것 같다. 이 또한 중앙집권보다는 인본주의 경향이 크다. 유교는 교육에 두는 것 같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인본주의가 있지만 중앙집권 사회에서 안주하는 경향이 크다. 이슬람은 다 필요 없다. 규칙적 기도만이 최고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는 종교 건물의 공간 구성에서 본 나의 단순한 종교관 이야기다.

 

사람은 사회성의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의식이 있다. 여기서 나와 우리를 가꾸는 방법론으로 절차와 모임, 자기 성찰과 교육, 그리고 기도를 생각해낸 모양이다.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작은 나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사람과 사회도 그렇다. 어느 길로 가든 행복에 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 미래에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아는 유연한 방법론이 대세가 되겠다. 무엇일까? 여기서 다시 한 번 각각 종교건물의 공간특징을 정리해 본다.

 

천주교 : 제대 중심, 기본활동은 미사, 성체성사, 특징은 제대, 스테인드글라스

개신교 : 강단 중심, 기본활동은 예배와 설교, 특징은 간결, 설교 위주

불교 : 불상과 법당, 기본활동은 예불과 참선, 특징은 대칭구조, 수행공간

이슬람 : 메카 방향, 기본활동은 기도와 쿠란 낭독, 특징은 미흐라브, 아라베스크

유교 : 제단과 사당, 기본활동은 제사, 효 실천, 특징은 조화로움, 제례공간

 

이제 여행가의 마음에서 글을 써 봅니다. 여러분도 기본 활동만 이해하면 공간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창의성과 미래성만 가미하면 최고의 건축물이 되겠지요. 산 속의 나무를 상세히 아는 것보다 산 전체의 느낌과 색깔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이미 여러분도 최고의 건축가가 된 셈입니다. 최고의 건축가가 아니라도 여러분이 여행하면서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은 많이 달라집니다. 보는 눈이 전문가 수준이 되는 것입니다.

 

굳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요즈음 해외여행을 많이 합니다. 가 보는 곳이 따지고 보면 과거와 현재의 종교적인 건물이나 유물이 대부분입니다. 기본 개념만 이해해도 여행하는 맛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여행 중이라도 외관의 모습을 둘려보는 것보다 안에 들어가서 잠깐이라도 동참해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외관은 외부에 과시하고자 하며 내부는 방문자를 감동시킵니다. 여행자라면 외부보다 내부를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관광 도중에 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해보고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다. 대웅전에서 삼배를 해보고 대성전에서 명폐에 절을 올린다. 그리고 모스크에서 메카방향으로 기도해 본다.

 

외국 종교건축물에 가보면 자주 접하는 것이 천창과 고창입니다. 여기서 솟아져 내려오는 빛은 하루 종일 시시각각 변합니다. 건물 공간형태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그 결과가 다릅니다. 제가 한 성당에 섰습니다. 그 빛과 색깔에 감동받아 한동안 황홀해 하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느님이 강림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모스크에 서면 비슷한 경우가 생기고, 대웅전 부처 앞에 서면 또한 그렇습니다. 사찰이나 대성전에 들어서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건축공간은 이렇게 별스럽습니다. 그만큼 공간구성에 따라 인간에게 특별함을 줍니다. 진하게 말하면 건축공간은 사람을 쇠뇌시키는 것이죠. 인간은 이렇게 위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분위기에 좌우되는 인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여행을 많이 다닙니다. 이 건축물은 인간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것이 제가 여행할 때 항상 하는 질문입니다. 그 답으로는 우리는 언제나 허상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