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105 달빛 그녀
새해, 그냥 집에 있었다. 평소 같으면 운동을 했겠다. 그러나 집에만 머물렀다. 몸과 마음이 왠지 나른했다. 한 살을 더 먹게 되어서 그럴까? 저 넘어 70 고개가 가까이 보여서 그럴까? 사람을 만나거나 운동을 하면 시간을 잊기 쉽다. 그러나 새해 며칠이라도 혼자 집에 머물며 천천히 시간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집에만 있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이 생각날까?
새해 하룻날과 그 다음날, 난 늦게 일어났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도 싫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커튼을 열지 않았다. 그냥 책상 위 조명으로만 지냈다. 아침을 먹고 나니 나도 모르게 이 방 저 방을 들락거렸다. TV를 켜고 무슨 방송이 있나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아니? 음악을 들어볼까 하고 라디오를 틀었다. 이것도 재미가 없었다.
조용하게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작업대로 갔다. 정신없이 금속공예를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벌써 13년의 세월이 되었다. 미소를 짓는다. 힘들었지만 작업하는 것이 좋았지.
작업대 위에 은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니 작업하면서 제쳐둔 은 조각들이다. 그냥 뒹굴고 있다. 손가락으로 헤집어 본다. 그 안에 찌그려진 여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였다. 박스형 펜던트(Pendant)에 새겨 넣었던 이미지였다. 마음이 들지 않아 구겨서 쳐 박아두었던 것이다. 벌써 버려야 했던 것이다.
보통 작업하다 생긴 조각은 녹여 은덩어리로 만든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바로 녹여 버린다. 바로 버리기에는 그녀가 너무 미웠던가? 손바닥에 그것을 두고 가만히 보았다.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그래, 그녀를 다시 만들자!”
작업대에 앉았다. 그녀는 항상 웃었지. 그녀는 긴 머리를 했다. 그녀를 만나고 나는 금방 그녀를 사랑했었지. 나는 그녀와 함께 우선 작은 어머니(숙모)를 뵈었다. 작은 어머니는 “달 같다”고 하였다. 나는 자신이 생겼다. 그 다음 어머니를 뵈었다. 그때 어머니는 “둥글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됐구나“ 했다.
그래, 그녀는 달 같았지. 달, 달, 둥근 달이었다. 둥근 달을 다시 그려볼까? 은 선으로 획 그어 보았다. 둥근 얼굴이 생겼다. 긴 머리를 두르고 동그란 눈을 넣었다. 그리고 입술을 붙였다. 이렇게 난 이틀 내내 붙이고 갈고 했다. 마지막으로 Oxidized(산화시켜 거슬리게 하는 기법)시킨 후 윤곽선을 광내고 닦았다.
괜히 산화시켜 검게 했나? 은은한 달빛이 아닌 밤하늘의 어둠이 아닌가? 밝은 달이 세파에 어두운 달이 되어 버렸나? 세상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나? 아니, 내가 그리 만들었다. 난 그녀의 방패가 되어주질 못했다. 난 작업 중 여러 번 이미지를 버렸다. 그 동안 난 몰랐다. 세파에 변했어도 어둠의 빛이 더 매혹적일 수 있다는 것을.
목줄을 달았다. 지금 보니 그것은 어둠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웃고 있었다. 은은한 달빛이었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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