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28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서울에서 살면 참 좋은 것도 많다. 65세를 넘기니 공짜 지하철을 탄다. 필요한 모든 재료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 서울은 모든 인프라와 편익시설이 몰려 있다. 구경거리도 많고 사람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오는 모양이다. 서울은 비대해지고 몸살을 앓는가 보다.
그제 하우스 콘서트(House Concert)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상경하였다. 겸사 종로3가에서 은공예 재료를 사고 그 다음 오후에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였다. 서울에 오니 콘서트를 감상할 수 있다. 필요한 재료를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재료구입비를 15% 아낄 수 있다. 현금을 들고 가면 재료 판매사에서는 정기 구매자에게 그런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 아끼고자 매번 오기는 매우 힘들다. 판매 목적이 아닌 취미로 은공예를 하기 때문에 그 수량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양이 적어도 필요한 것은 다 필요하다 조금씩 말이다. 그래서 서울에 볼일이 있는 경우에는 좀 일찍 서둘려 올라와서 무조건 종로3가 재료 상회를 들린 후 다른 약속 장소로 이동한다.
재료를 구입하고 시간이 남아 서울 도심의 정경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눈에 현수막 하나가 들어왔다. 참 재미있는 현수막 글이다.

“비둘기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비둘기로 인하여 누군가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이는 구청에서 걸은 현수막이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몰려드는 비둘기 때문에 도시와 사람들에게 피해가 생깁니다. 비둘기는 스스로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비둘기가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두세 번 이상 정독했다. 생고생 하고 있는 국어였다. 이렇게 고쳐보니 뜻과 의도가 쉽게 이해가 되었다. 즉 약육강식과 자연도태가 되는 자연세계에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 내 공원 호수에 가면 물속에 많은 잉어와 향어가 있다. 그곳에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팻말을 볼 수 있다. 동물원에서도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비슷한 팻말을 본다.
과거 서해안 연락선을 타 본 적이 있다. 연락선을 보고 따라오는 갈매기들이 많았다. 갈매기가 어선을 따라 다니는 것을 보았지만 연락선을 따라 날아다니는 것은 특이했다. 여행객들이 손에 새우깡을 놓으니 갈매기들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호기심 많은 나도 해 보았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었다. 야호!
아파트 단지에서 보면 야외에 고양이들을 위한 음식물을 둔 곳을 볼 수 있다. 혹 끼니를 못 때우는 고양이가 있을까 하고 염려되어 둔 것 같았다.
동대구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기차선이 교차하는 역으로 그래서 항상 여행객들로 붐빈다. 나는 가끔 그곳을 이용한다.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중앙 홀에 앉아 있으면 심심찮게 다가오는 비둘기를 볼 수 있다. 떨어진 과자나 여행객들이 주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기차 출발시간에 맞추어 허둥지둥 역사 출입구로 들어갈 때였다. 출입구 밖에 주저 않아 구걸하는 걸인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날이었다. 참으로 힘들어 보였다. 나는 무심코 작은 돈을 놓았다.
우리 생활에서는 그런 비슷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사람과 동물 사이도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렇다. 그냥 도와주면 몰려온다. 그리고 너도 나도 힘들어진다. 너는 공짜로 먹어서 의존성이 생겨 약해진다. 아무거나 주는 것만 먹으니 편식으로 건강에도 좋지 않다. 그럼 그들은 도태된다. 주는 나는 마구 몰려오는 그들 때문에 힘들어진다.
“놀면 뭐하나? 자식 도와야지” 후배는 아직까지도 자식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자식이 30세를 넘겨도 하물며 40세를 넘겨도 그렇다. 실제 요즈음 젊은이들은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좋은 아파트와 중대형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몸에 걸친 옷도 메이커 제품이다. 사실 부모 도움 없이는 젊은 나이에 아파트도 자가용도 가질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사는 젊은이들은 빈곤에서 헤어나가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힘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그냥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부모는 다 큰 자식에게도 그냥 많이 제공한다. 부모는 애써 아끼고 자식은 마냥 쓴다. 이런 세상일수록 도움을 받는 사람은 의존성이 커지고 약해진다. 사람과 자식도 자연세계에 그냥 두는 것이 좋을까? 맞는다면 도시에 걸린 현수막 같이 “도와주지 마세요. 이 사회에서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마세요.” 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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