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3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의료계의 파업에 결국은 정부가 손을 들었다. 즉 의료단체가 국민을 상대로 승리를 했다.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 크기와 질을 더 높이기도 하였다. 다른 전문단체들은 할 수 없는 그들에게만 오직 모든 예외를 인정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들의 밥그릇을 건들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의과대학 입학은 젊은이들의 꿈이 되었다. 왜? 나라가 무너져도 세상이 변해도, 그들의 밥그릇은 여전하고 언제나 필요하면 예외를 인정해 주니까.
IMF 이전에는 건축사도 사무실 문만 열면 밥 먹고 사는 것은 해결되었다. 그때 건축사 정원이 동결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도 고생을 한 후 건축사가 되었다. 그때 그 시절 건축사는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 후 정부에서 우리를 무한 경쟁으로 몰아 넣었다. 전문가도 무한 경쟁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그대로였다. 원칙과 정직으로 일해야 하는 건축사는 현실과 타협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거부했다. 전문가인 건축가가 현실과 타협을 하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물론 좀 더 돈을 잘 벌겠지만 말이다. 그럴 바야 건축사를 버리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버리면 참 쪽팔린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 이민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일당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았지만 마음은 더 편했다.
아직도 건설업계에서는 사고가 많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공사비가 빡빡하니 그런 데 돈을 쓸 여유가 없다. 당연 감리나 설계도 허술해진다. 당연 감리자도 저임금에 형식적인 감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 건축사나 감리자는 현실과 타협하며 살 수 밖에 없다. 시방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건축사도 자존심을 팔아먹고 진짜인양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내가 한국을 떠난 지가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설업계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건축사 자격증으로 대충 편하게 먹고 살면 될 일이었지만 진정 스스로 버린 것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경제적 문제는 따지고 보면 이것 하나 저것 하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럴 바야 사무실에서 비굴하게 사인이나 도장을 찍는 것보다 힘이 들더라도 몸으로 때우고 당당하게 일하는 것이 떳떳했다.
정부에서 ‘전문가 자격증을 줄 테니 열심히 해 봐’라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하여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는 정부는 나를 천천히 구덩이에 넣어 버리고 그곳에서 ‘알아서 살라’고 하였다. 변호사, 세무사 등등 모든 자격증이 그랬다.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무한경쟁을 하라고 하니 나는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정부에서 준 자격증을 내팽개쳤다.
원칙으로 대하면 굶어죽고 이 분야에서 쫓겨난다. 반면 현실과 타협하고 살다보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때 정부에서 칼을 들고 단죄를 하리라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싼 가격으로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만들고 건물과 공장을 지었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다. 시스템은 여전한데 문제가 생기니 기업과 전문가를 탓한다. 그리고 기업가와 전문가에 칼을 대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다 통했는데 하나 안 된 곳이 있다. 의료계다. 아마도 전 정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 변호사도 무한경쟁 시스템인데 너희 의사가 무엇이야? 그런데 그는 의사들에게 졌다. 전문가도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든 최소한 전문가가 원칙과 정직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는 결국은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 완벽한 안전관리, 원칙 시공과 공사 감리를 하면 좋겠지만 그것 모두 돈이다. 지금 아파트 공사비가 평당 6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평당 1000만원을 넘어야 된다. 아파트뿐만 아니다. 도로, 공공시설, 상업시설 등등 모든 시설이 마찬가지다. 싼 것이 비지떡이다. 우리는 이런 것에 젖어 있다. 사실 여러 건축물이나 시설을 곰곰이 보면 대충 대충이고 허술하다.
가격은 올리지 않고 안전하게 공사하라고 정부가 더 강하게 나오면 기업은 하는 척 해야 한다. 그럼 안전 관리비를 늘이는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부분에는 그만큼 허술하다고 보면 된다. 누군가는 눈감고 살아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세상에서 일하며 밥 먹고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일찍 은퇴하여 차라리 시간을 즐기자 하였다.
요즈음 한국의 젊은 엘리트들이 한국을 더 많이 떠난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더 그렇다. 석사, 박사, 전문가들이 선진국에 가면 더 대우 받고 연봉은 더 많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정부가 특별 대우해 줄 테니 열심히 배우라 해놓고는 무한경쟁 속으로 버리기 때문이다. 요즈음 농·공·상을 천대하는 문화가 어찌된 일인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나는 40대 중반에 이민을 하였으니 25년 이상은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세금도 냈다. 주로 사업소득이었고 그에 대한 세금이었다. 귀국 후에도 사업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살 자격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국에 전혀 누가 되지 않도록 이민자의 티가 나지 않고 검소하게 살며 어떠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과거 때나 지금이나 국가로부터 어떠한 혜택을 받아본 적도 없다. 코로나 시절에도 사업을 하였지만 국가로부터 돈 한 푼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 완전 은퇴하였다.
며칠 전 뜻밖의 횡재를 했다. 국가로부터 18만원 돈을 받았다. 소비지원금이라 하였다. 처음이었다. 돈 18만원에 기뻐해야 하나? 내가 성공하여 이 돈이 모기 발톱도 되지 않을 정도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것은 매우 큰돈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돈이다. 그래도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된다. 정부가 괜히 주는 돈이다. 기분이 좋다가 나쁘기도 했다. 왜? 기억의 문제인가? 항상 정부는 나에게 주는 것처럼 하고는 한 순간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정부가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거라 하여도 나는 건축사를 내팽개쳤다. 정말 잘하면 업계에서 쫓겨날 것 같고, 적당히 잘하면 내 스스로 보아도 가짜 같았고 문제가 생기면 감옥소행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절대 어떠한 공짜를 받지 않는다. 나를 치사한 놈으로 만들 참인가? 정부로부터 받는 공짜 돈도 뇌물이니까 말이다. 이 돈이 누구의 돈인가? 결국 내 돈이고 우리의 돈이다. 정부가 이 돈을 주고는 생색을 내면서 나중에 무엇을 요구할까? 만약 내가 신청을 안 해도 나중에,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돈을 받았다. 은퇴자다. 이 돈을 받고 너의 의도로 흘러가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겠다 싶었다. 그럼,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내가 만든 피클볼 클럽은 제로에서 시작하여 이제 회원이 30명이 이른다. 잘 됐다. ‘운동 후 회식을 하겠으니 회원 모두 모여라’고 하였다. 그래서 어제 16명이 운동에 참가하였고 운동 후 근사한 식당에서 점심을 하였다. 화기애애하였다. 땀을 흘리고 난 다음에 먹는 생삼겹김치찌게+돌솥밥은 특별했다. 나는 한마디 했지. “모여 주어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사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여러분 돈이지요.” 나포함 17명이다. 18만원 카드를 주니 4,000원이 남는다. 그냥 다 계산하시라고 하니 사장이 맥주 한 병을 서비스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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