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경 버스를 타고 Banff에서 Vancouver로 이동하였다. 다음날 아침 9시경 도착 예정이었다. 낮 차로 가면 되지만 하루밤 숙박비도 아끼고 다음날 바로 관광을 할 수가 있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미리 예약하는 경우 "머 별 것인가" 하는 가끔 생기는 안이함도 작용했다. 또한 예약할 때는 12시간 동안 낮시간에 차창밖으로 록키산맥 전경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간과하였고, 그래서 차라리 밤에 잠을 자면서 이동하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막상 밤시간에 이동을 하면서 밤12시간을 버스 안에 몸을 싣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Bannf에서 관광을 하고 나서 록키가 어떤 모습이라는 것을 미리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낮에 버스 차장밖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회색빛 광대한 뾰죽산과 점점이 박혀있는 침엽수, 그리고 가끔 나타나는 호수면 같은 전경들이 반복되리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내눈은 매번 회색빛 험준한 뾰죽산맥보다는 가끔은 다채로운 색깔의 가을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참으로 좋은 동네에 살았던 모양이다. 10월 중순 이때쯤, 내가 살았던 Atlantic Canada는 진하고 노란 붉은 색 가을이다. 물론 올록볼록한 입체가 아닌 평면화이지만 말이다. 여기는 흑백의 산봉우리와 짙은 침엽수 색깔뿐이다. 하늘로 솟은 입체화이지만 흑백과 회색으로 된 동양화 같다. 그러나 수묵의 동양화같지 않다. 그 기교가 없기 때문이다. 그 회색빛 뾰족한 산의 광대한 기운만 있지 신비한 멋은 없는 것이다. 문듯 캐나다 미술의 대가 Group Of Seven의 작품들이 가슴에 떠 오른다. 작가들이 원경과 회색보다는 주로 근경과 색채감으로 감정을 보태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들은 동부캐나다의 색깔을 캔버스에 칠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차를 기다리기 위하여 2시간 대합실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승차하자 밖은 어두컴컴하여 차창너머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눈을 감고 자기 시작했다. 밖으로 보니 차창너머로 하늘과 산봉우리가 만나는 시커먼 실루엣이 빠르게 지나갔다. 마치 어릴 때 밤차로 산너머 고향을 가는 것 같았다. 그때는 좀 무서웠지만 지금은 어릴 때 그러한 추억하나만 만들 뿐이었다.
록키가 그렇게도 높나? 적당히 수평 잡힌 버스 좌석이 뒤로 기울고 새벽을 넘기고야 그때야 앞으로 기울어 짐을 느꼈다. Banff도 록키산막의 언저리에 있을 텐데, 그곳에서 록키산맥의 정상 고개를 넘기 위하여 오르막을 계속 6시간을 달렸던 것이다. 털커덩거림이 심하여 보니 새벽 3시경이었다. 그때부터 내리막이었다. 내리막에는 버스는 많이 떨컹거렸다. 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리막에서 보편적으로 생기는 승객들의 느낌이다. 오르막길에는 몸이 뒤로 기울고 쏠리면서 다소 안정감이 생기는 것인데 반하여 내리막에는 그 반대이다. 가끔 속력이 줄어지는 경우에는 몸이 앞으로 기울게 되어, 아니 그래도 생꿈을 꾸는 데다 깜짝 나는 놀랜다.
자야 하는 밤시간, 12시간을 넘게 한곳에 앉아 있는 것은 쉬운 짓이 아니었다. 가늘다란 내 허리가 자꾸 이상해진다. 그래도 계속 요상한 꿈을 꾸면서 잠을 만들려고 몸과 마음을 좁은 버스좌석에 꾸겨 넣었다. 그러나 심심하면 버스는 정차하고 그때마다 승객들이 타고 내린다. 그것도 마음대로 아니 되었다. 옆을 보니 가끔 내 옆좌석은 빈다. "애라 모르겠다." 하고 다리를 뻗을까? 해 보았지만 영 아니 된다. 그리고 바로 승객이 차지한다. 건너편 좌석에서 한사람이 옆좌석까지 다리와 몸을 벋어서 자고 있었다.
예상대로 버스는 아침 9시에 밴쿠버에 도착하였다. 버스역은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었다. 나는 다운타운의 동쪽인 Burnarby쪽으로 가야 한다. 다운타운의 호스텔을 선택하여야 했으나 주택지 근처 저렴한 곳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하여 봐야 호스텔 체그인 할 수가 없다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이제 마지막 행선지에 도착하였고 시간도 많다. 느긋이 근처 커피샾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괜히 물어보기도 하고 심통도 냈다. 이제 며칠 후 여기서 고국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도 한번은 와 보고 싶었던 곳, 여기 오기까지 동부캐나다에서 무려 4개월이 걸렸다. 모두들 그렇게 말했다. 고국 가깝고, 따뜻하고, 산수좋고. 그래, 지금부터 둘려 보면 알리라. Vancouver, 별곳도 아닌 곳이 그렇게 나를 불렸을까. 아닐 것이다.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