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6 서울 나들이와 미술관 관람
211106 서울 나들이와 미술관 관람
외국국적동포는 만 65세가 되면 한국국적을 회복할 수 있다. 나의 경우 2년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국적회복에 필요한 서류 중에는 캐나다 정부로부터 받은 서류 하나가 있다. 그것은 시민권증서(원본)이다. 내가 캐나다 시민권을 받을 때는 캐나다 정부로부터 두 가지 서류를 받았다. Certificate of Canadian Citizenship(신용카드 크기의 카드형식)과 Document(A4 사이즈의 종이, 이름, 이민성 장관 사인, 증서 번호, 증서 받은 날짜 등이 표기된 서류로 특별한 명칭이 없다)이 그것이다. 나는 그중 전자는 현재 가지고 있고, 후자(Document)는 오래전에 분실했다. 그런데 한국국적회복에 그것의 원본이 필요하다고 하니 미리 준비를 해야만 했다.
서울로 상경하여 덕수궁 옆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 들렸다. 나는 Document만을 신청한다고 분명하게 여러번 말하였으나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대사관 직원은 두툼한 양식서류와 명함만을 조그만한 문틈사이로 내 밀었다.
“전 Document만 원하는데요”
“그 서류를 작성하고 의문이 있으면 이메일로 하세요”
한번 더 물어 보았으나 직원의 똑같은 메아리였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서류를 살펴보니 여권사진이 필요한 신청이었다. 길 건너 좀 더 올라가니 중앙사진관이 보였다. 그곳에서 여권사진을 찍었다. 사진 4 매에 20,000원이었다. 아침 일찍 세종에서 상경하였고 캐나다 대사관에서 소비한 시간이 10분도 채 되지 않았기 아직 오전이었다.
덕수궁길을 한바뀌 돌았다. 최근 개방된 영국대사관이 있는 방향으로 덕수궁길을 거처 “고종의 길(현재 공사 중으로 볼 것이 없다)”이라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구릉위를 올라 구러시아공사관에 이르렀다. 구러시아 공사관은 공사중이었다.
여기는 주변보다 높은 구릉의 꼭대기였다. 덕수궁보다 더 높은 곳에 구러시아공사관이 있다. 건물은 탑같이 높다. 그곳에서는 덕수궁 건물지붕이 다 보인다. 아마도 그 옛날에는 당치 않는 일이었을 것이 분명할진대… 러시아의 꼼수에 고종의 무능함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 서 보면 누구라도 그런 느낌이 들 것 같다. 덕수궁 근처에 오면 항상 나는 너무 작아진다. 역사를 감정없이 사실대로 느끼기 때문이다.
고종의 길에서 나오니 바로 구세군역사박물관, 정동아트센타 건물이 보였다. 건물에 들어서니 1층는 브런치 커피샆이고 2층은 예배당이었다. 1928년 구세군사관학교건물이다. 내부천정을 보니 그 시절 목조가구형식이 보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들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에는 누군가와 함께 여기서 느긋하게 커피향을 나누어야지… 그럼, 아마도 우리는 쉽게 1920년대 과거로 돌아갈 것 같았다.
다시 영국대사관 방향으로 돌아와서 근처 조선일보사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조선일보미술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역사깊은 신문사 사옥답게 1층 건물 중앙홀은 근엄했다. 벽에 걸려있는 것은 큰 사진액자였다. 예술 그림 하나 없는 중앙홀은 그저 무겁기만 했다. 물어보니 2층이 미술관이라고 했다. 많이 기대했다. 상설미술관이면 우리나라 유명한 그림으로 꽉차 있겠지 하는 기대로 올라갔다.
텅 빈 공간이었다. 그림 몇 점이 텅 빈 벽면을 좀 채웠다. 어느 작가의 전시회가 있었다. 비싼 서울 한 복판 큰 건물 안의 2층이 아니던가? 안내원에게 물었다. 상설전시미술품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그런 것은 없다고 하였다. 미술관은 미술관인데 상설전시품이 없다면 그것은 그때 그때 빌려주는 전시관이거나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입장료가 없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덕수궁 옆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다. 그곳에는 볼만한 그림들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시립미술관 입구는 다채로웠고 정원도 조각품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건축물은 미술관으로서는 훌륭했다.
중앙홀은 깨끗하면서 웅장하였다. 거대한 흰색의 벽면이 매혹적이었으나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마침 천경자 전시회가 있었다. 천경자 화가가 서울시에 기증한 93점 중 몇 점을 전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왠 복이야! 하고 열심히 관람하였다.
그 실에서 나와서 다른 실을 둘려보았다. 천경자 전시실은 시립미술관 전시실의 여러 전시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둘려보고 둘려보아도 상설미술품이 없었다. 지하층, 지상1층, 2층 공간은 넓었고 많은 공간이 있었으나 넓은 공간과 벽면에는 비디오 화면과 소리뿐이었다.
미술관은 크고 넓고 좋은데 텅텅 비어 있고 그 빈 공간에 큰 비디오 화면으로만 차 있다. 그림은 없다. 골 빈 공간이었다. 빈 공간마다 지켜 서 있는 직원은 반드시 있다. 그들은 실마다 왜 있는지 궁금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입장료는 없었다. 골빈 공간이니 입장료가 없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다시 시청역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광장에 올라서서 서울시청 건물을 바라 보았다. 시청 석조건물(시청본관) 뒤의 유리건물(시청 신청사)은 내 눈에는 이상한 괴물로 보인다. 그 시대 그 관리자 상이기도 하다.
그 반대편에는 가을나무 가지 사이로 대한성공회 건물이 보였다. 안정된 색감과 형태이다. 세실극장의 야외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가면 극장옥상이다. 그곳에서 덕수궁 먼 전경을 바라 볼 수가 있었다.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나왔다. 길을 건너니 동아일보사옥이 나왔다. 그 건물 옆에 일민미술관 신문박물관 건물이 보였다. 건물 입구 중앙홀에 들어서니 검은 정장 차림의 경비원이 다가왔다. 조폭같은 차림의 그는 미술관 관람차 왔다고 하니 미술관은 지금 내부공사 중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속으로 미술관… 당연 그럴 것이다…
대신 신문박물관을 관람했다. 이 건물 5층에 있었다. 신문 역사와 윤전기를 둘려보았다. 윤전기와 신문을 찍어내는 틀을 보니 그 시대로 돌아가는 듯 했다. 한 놈이 나를 제재를 한다. 비껴라고… 이곳에서 방송용 촬영이 시작되었다. 무슨 방송용인가 하고 몰래 한 컷 촬영했다. 정다운 사람도 있고, 뭐 같은 놈도 있다.
뭐 여기를 전부 전세 내었나? 관람하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그들인데 말이다.
나는 미술관 이름만 있는 이 건물에서 나왔다. 다행이 신문박물관을 구경하였으니 다행으로 여겼으나 방송촬영으로 내 기분이 망가졌다. 미국대사관 앞으로 해서 광화문 광장을 지났다. 이순신 동상 옆으로 세종문화회관이 보이고 그 끝머리에 세종대왕 동상이 보였다. 그들은 근대 한국의 영광과 슬픔을 빠짐없이 바라보았으리라.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서울시립미술관은 국립이 아닌 시립이기에 골 비었다고 하지만, 국립은 꽤 괜찮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경복궁 돌담길을 걷는 기분은 역사의 뒤안길을 지나가는 기분이다. 꽤 괜찮았다.
우측 너머로 국립현대미술관 건물이 보였다. 중앙벽돌건물과 현대건물이 중앙정원를 “ㄷ”자 형태로 감싸는 형태였다. 뒷뜰로 가보니 경근당과 옥첩당 옛 건물이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건축물과 주변 환경은 신구의 절묘한 만남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한 실에서 이건희 컬랙션 관람이 한창이었다. 예약이 2주나 밀려 있어 관람할 수 없었다. 나는 대신 넓고 다양한 전시실을 둘려 보았다. 지층, 1층, 2층… 한 실에라도 상설 전시실이 없었다. 여기도 역시 그 많은 실마다 비디오 영상과 지켜서 있는 안내원만 있고 전시품이 없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정 보고 싶으면 구석 한칸에 신인 전시관이 있다고 일러 주었다. 따로 미술품을 보관하는 곳이 있는가? 아니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이 없는가? 그렇다면 국립현대비술관도 골빈 공간인 것이다. 골빈 미인인 셈이다.
내 경험으로는 여기는 딴판이다. 나는 5만도 아니 되는 캐나다 소도시 미술관에 여러 번 가 보았다. 국립현대미술관보다 작지만 그 안에는 수만의 유명한 미술품이 전시되고 보관되어 있다. 회전되면서 전시를 하고 특별전도 한다. 지하에 가면 전시 준비를 하는 광경도 볼 수 가 있고 보관된 미술품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이는 상시 이루어지는 미술관의 일상이다. 5만인구 도시와 천만인구 거대도시이다.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인가?
궝대신 닭이라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옆으로 금호미술관이 있었다. 미술관이라고 하기보다 Gallery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곳으로 들어갔다. 화가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내 갈증을 여기서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었다.
경복궁에서 안국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인사동 거리를 통과하여 탑공공원에 도착하였다. 이미 늦은 오후였다. 배가 고팝다. 탑골공원 뒷편에는 국밥집이 많았다. 저녁으로 한 그릇 했다. 탑골공원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상징성이 매우 크다. 대낫에 한잔술로 고개숙인 젊은이, 특히 노인네들…
나 젊었을 때 소주 한 병 나팔 불고 한번 이곳에서 고개 숙여 앉아 있었었지
여기서 조금만 걸으면 근처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역으로 직행하여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세종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다.
나는 이른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계속 걸은 셈이 된다. 캐나다 대사관을 찾았지만 빈 양식의 서류만 얻었고, 시립, 국립, 개인미술관을 찾았지만 다 골빈놈이었다. 다행이 하루 열심히 걸었기에 눈에 채운 도시모습은 다양하고 많았다.
공원 뒷편 돌담길에 노인네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나는 서서 한참 장기판을 보았다.
인생이 마치 한판의 장기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