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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경주에서 신라 능을 바라보며

Hi Yeon 2016. 2. 12. 11:52

설날 경주에서 신라 능을 바라보며

 

설을 쇠러 고향인 경주에 갔다. 경주는 수많은 고적들이 있는 천년의 신라 고도이다. 걸어서 시내로 들어가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은 구릉 같은 능들이다. 경주 도심의 절반은 능으로 꽉 차 있다. 경주 전역에 퍼져있는 신라시대 능은 수만기가 된다.

 

능과 능 사이로 걸어보았다. 마치 1500년전으로 돌아간듯하다. 어릴 적 능 봉우리 위에서 미끄럼을 탔다. 애들과 함께 능 주변을 달리고 뛰었다. 그때는 여기가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 둘려보니 이제야 능 봉우리 위에 뿌리를 박고 있는 고목이 보인다. 봉우리가 잘려나가서 중간 부분이 평평한 능도 보이고 봉우리가 거의 없는 능 터도 보인다. 능의 주변에는 주택과 상가가 있다. 가로 세로로 도로가 능들을 갈라놓고 있다. 되돌아가서 능 사이에 서본다. 겨울 바람이 휙 지나간다.

현재의 경주 시내는 옛신라의 무덤지였다. 그 당시 주거지와 왕궁은 경주 시내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포석정과 아압지가 있는 터였다. 그 이후 어찌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옛신라 왕실의 능터가 주택지로 변해 버렸다옛날로 돌아가본다. 오랑케과 왜적이 고향을 약탈하기 위하여 침입하였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살던 집이 유린 당했다. 그러나 다행히 1500년 전 조상 능은 별일 없었다.

우리는 평소 “그것은 능이 아니다.” 라고 애써 변명을 하면서 능을 숨겼다. 사람들도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신성한 구릉이다.라고 둘려댔다. 모두 그렇게 알고 살아 왔다. 애써 모른 척 하면서, 애써 아닌 척 하면서 바로 옆에 끼고 지켜왔던 것이다. 그래서 경주시내 능들은 외적의 침락에도 불구하고 온전할 수가 있었다. 지금도 경주 시내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섞여 있다. 어찌보면, 애들이 뛰어 노는 볼품없는 구릉이었다. 그것이 정말 좋았었는 데 말이다.

경주에는 많은 능들이 있다. 그중 경주 시내에 분포되어 있는 능은 통일 이전 신라시대(AD 3-4세기)의 능으로 돌을 쌓아 만든 적석총이다. 왕이나 왕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나무궤 위에 돌을 차곡차곡 쌓은 후 그 위에 흙을 덮어 여인네 젖가슴 모양의 크고 둥그런 무덤을 만들었다. 이런 형식의 무덤은 부장품을 훔치기 위해서 몰래 구멍을 파고 들어가면 돌구멍이 무너진다. 도둑은 산채로 매장된다. 공개적으로 능 봉우리 상부부터 해체해야만 도굴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덕분에 1500년 세월을 누구의 손도 허락하지 않고 잘 견디어 왔었다. '신성한 구릉이다.' 라는 둘러댐과 더불어 돌을 쌓아 만든 형식(적석총) 덕분이었다.

일본이 우리를 점령했다. 일본놈들은 태초부터 도둑질을 하면서 우리 문화를 이어 받았다. 눈치가 빨랐다. 그놈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그 능에 욕망의 침을 흘렸다. 자신의 조상을 신처럼 모시는 놈들이 남의 조상을 마구 유린했던 것이다. 그놈들은 공식적으로 도굴했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에고 에고 어쩌나, 그곳에 번쩍이는 신비스러운 금관이 나와 버렸다. 그것을 보고 일본 놈들이 미처 버렸다. 그때부터 그놈들은 본격적으로 경주 전역의 능을 도굴하기 시작했다. 대대적으로 1500년 전의 조상묘가 파헤쳐지고 도둑질 당했던 것이다.

설날, 어릴 때 놀던 고분군을 지나니 무심코 잠재워 있었던 울분이 솟아져 나온다. 조상의 묘를 파헤친 놈들이다. 태초부터 조상의 뼈를 부수고 살을 찟어 온 놈들이며 재물을 악탈해 간 놈들이다. 그러한 많은 흔적들이 이 도시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죽은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단지 과거의 흔적만 남아 있다. 그러나 내 귀에는 들린다. 침락과 피의 세월을 견디어 왔다고 이렇게 말없이 없는 듯 살아왔다고.

사실, 오래 전부터 능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쉬쉬했었다. 능을 표시하는 지석도 스스로 없애 버렸다. 하물며 그것은 '능이 아니다'고 모두가 말했다. 더구나 도굴로 인하여 부장품들은 사라졌다. 이제 도데체 누구의 능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조금 남아 있는 부장물과 능의 크기에 따라 왕족 신분이라고만 추정할 뿐이다.

문듯 돌기둥만 남아 있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이 떠 오른다. 그 주위에 스타디움과 여러가지 많은 건축물도 보인다. 대부분 돌기둥과 돌기단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외적이 침입하여 파괴한 흔적이다. 작년 그곳을 둘러보면서 걸어보았을 때 파괴된 잔재에서 그 시대의 사람과 숨소리를 느낄 수가 있었다. 빼어나고 뛰어난 문화였다. 정착하여 사는 농경문화(AD 300)였던 우리와 다른 점은 그리스는 정복과 정복당하는 해양문화(BC 400)였다는 것이다. 그곳은 역동적이다 하면 여기는 조용 그 자체이다. 그곳은 눈에 보이지만 여기는 감추어져 있다. 그곳은 크지만 여기는 아기자기하다. 그곳은 못짓으로 말하지만 여기는 침묵으로 말한다. 현재 알 수없는 무엇들이 땅 속과 능 속에 그대로 있고 일부는 도굴되어 많은 문화재가 도적놈들 손에 넘어갔다. 도데체 그 수가 얼마인지, 어떤 것이지 조차 모른다. 다만 신라 능에서 나온 몇개의 구조물 장식과 부장품만 보아, 700년 세월의 차이가 있지만, 그 빼어남이 파르테논을 앞선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돌아서면서 능을 다시 바라본다. 차가운 초하루 설 바람이 스처간다. 나무들이 능 봉우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애들은 철없이 나무가지에 올라타고 내리고 하며 능 위에서 미끄럼을 탄다. 역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잘려나가서 봉우리가 없는 능이 보인다. 그것은 모가지와 얼굴이 없는 우리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누구의 손에 있든 도굴된 많은 문화재가 세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겉으로 웅장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경주 들판 땅 속에서 수많은 영혼의 작품들이 지금 조용히 숨쉬고 있다고, 땅 밖에서는 큰 소리로 땅 속에서는 조용하게 “우리는 찬란하고 뛰어난 문화인이었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