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내 마음의 힐링 드라이브

이민을 온 시각장애인

Hi Yeon 2013. 11. 20. 08:31

손님이 Skyline Acres 근처에 내리자 바로 사무실로부터 Forest Hill Tower 라는 주문이 왔다. 그것은 프레데릭톤에서 가장 높고 아파트이다. 나는 아파트 정문앞 도로에 차를 천천히 대고는 어디에 손님이 있는가하고 주변을 둘려보았다. 바로  아파트건물 입구문이 열리면서 검은 피부에 검은 안경을 중년 남자가 지팡이를 들고 나왔다. 마음 속으로 시각장애인 틀림이 없을텐데하고 여기고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터라 어떻게 하나 궁금해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아파트 정문을 열면 바로 경사로가 있고 끝나는 부분부터는 아스콘으로 포장된 주차장인데 차는 경사로가 끝나는 부분부터 50센티미터 떨어져 주차장에 있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을 핍업하기 위해서 잠깐 주차하는 장소이었다. 그분은 정말 정상인처럼 쉽게 내차의 문을 열고 탔다. 속으로는 감탄하고는 우선 손님에게 인사와 함께 행선지를 물었다. 그는 업타운에 있는 Scotia bank 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는  빠른 방법은 Highway 택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출발하면서 행여나 그분에게 혼돈을 줄까 하여, 나는  Highway 선택하여 그곳으로 가겠노라고  특별히 설명을 하였다. 장님은 별일이 아닌 듯 그러라고 했다.

우리는 10분도 안되어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나는 정확하게 은행정문에 차를 대고는 혹시나 하고 설명했다. Scotia Bank 지금 도착했고 우리는 바로 정문에 있습니다 하자, 그는 $20 지갑에서 내고는 잠깐 손가락 감촉으로 만져보고 내게 밀었다. 나는 거스름돈으로  이것은 $5 두장과 $2 동전 한 개 입니다 라고 설명하고는 그에게 건넸다. 그는 방금 전과 같이 손가락으로 확인한 후 돈을 주머니에 넣고는 마치 정상인처럼 유유히 Scotia Bank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 다시 그분을 Scotia Bank 에서 자기 아파트인 Forest Hill Tower 태웠다. 오전과 같이 정상인과 다름없이 타고 내리고 하였다. 정상인하고 다른 것은 지팡이로 한두번 더덤는 것이고 검은 안경을 섰다는 것이다. 한번은 사무소에서 Thomas 대학교,  James Duns 건물 후면 주차장, 윗끝부분이라고 구체적으로 주문이 왔다. 지체없이 그곳으로 차를 대자마자 그분이 나오는 것이 아니가. 때도 정상인처럼 쉽게 내차에 탔고 자기 아파트에서 내렸다.

몇번을 시각장애인 태우고 하였지만 계속 하나의 의문이 내 머리속에 뱅뱅 맴돌았다. 두 눈 멀쩡한 나도 이민을 하고 난 여기의 사람, 건물, 도시, 자연을 친근하게 느끼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는 , 귀와 감촉만으로 그는 어떻게 적응하였을까? 또한 작은 것은 촉감으로 어떻게 생긴것인지를 있으나  도시와 자연은  촉감의 범위를 넘어서는데, 과연 건물과 도시 그리고 자연을  그는 어떻게 머리와 마음으로 영상화하면서 쉽게 캐나다를 느끼고 친근하게 적응을 하였을까 였다.

TV 발명되어 보급된지가 오래되었다. 그것이 우리 생활에 깊숙히 개입되자 우리 스스로 개념을 머리속에 형상화하기 보다 타인이 만들어준 형태를 기계적으로 머리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TV 칼라로 바뀌면서 내가 상상해서 머리속에서 표현되는 색의 조합이 아니라 누군가가 보여주는 색에 도취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마음속의 상상의 색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손안의 스마트폰같은 영상매체가 개발되었고 이제 우리는 과거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만 접할 있었던 영상과 이미지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보고 즐기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이미 정해진 영상과 형태와 색상에 순응하고 살고 있다.

책을 읽고 주인공과 배경을 스스로 상상해서 구체화하고 형상화하여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수만가지의 영상을 마음속에 만들어가는기회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와 색상을 쉽게 접할 있어 힘들게 읽거나 듣기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고 듣고 그리고 스스로 이미지를 상상하는 기회는 가뭄과 같이 줄어들고  누군가가 미리 만든 이미지를 보는 기회는 홍수와 같이 많아진다. 그 따라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함께 단순화되고  동일체되어 가고있. 다른 사람이 준비한 종류의 획일화된 음식을 매일 먹듯이, 매일 그리고 매우 자주 같은 것을 보고, 그래서 비슷하게 느끼고 이미지화하는 일종의 생각과 상상의 동일성 속에 우리는 빠져있다.

어쩌면 눈을 통해 본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상상이라는 틀을 돌리는 데는 방해요소가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사물의 진정한 이치를 깨닫고자 때에 우리의 마음을 가릴 수도 있다. 간혹 우리는 사물의 아름다운 모양과 색깔이라는 겉모습에 마음이 기울어 물건을 못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봄으로 해서 이미지가 우리 마음을 가리는 선입견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사람이 나에게 책을 읽어 때, 혹은 내가 직접 책을 읽을 머리속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수만가지의 형태로 상상을 펼칠 있는 것도 보지 않음으로 해서 마음속에 설정된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상상의 나래를 쉽게 있는 것도, 보통 책을 읽은 책을 영상화한 영화를 보면 쉽게 식상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리라. 그래서 공평하게도 하느님은 눈이 없는 사람에게 진정 사물의 이치를 쉽게 깨닫고 쉽게 수만가지로 영상화 수가 있는 능력과 그것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자주 쉽게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별도로 주었는지도 모른다.

한번 눈으로 통해 머리와 마음속에 생긴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더욱이 오래동안 자주 보아 왔다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태어나서 유년기를 지나 수 십년동안 눈을 통해 자기나라의 이미지에 오래동안  길들어진 우리 이민자로서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충격이 되겠으며, 그나마 이미지에 친근감을 느끼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특히, 같은 사람, 같은 문화, 같은 언어의 틀속에 있는 동질성이 많은 우리민족 입장에서는 변화와 다양성을 쉽게 받아 들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 보인다 이민생활의 어려움은 보이지 않음으로서 정상인보다는 많겠지만, 항상 머리과 마음으로 상상하고 형상화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눈이 없는 그들에게는  여기의 모든 것, 즉 사람, 건물, 도시, 그리고 자연을 내 고향으로 삼아 산다는 것은  눈 있는 정상인보다는 훨신 쉽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