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5 이제 무얼해도 재미가 없다
날씨가 차다. 마음은 코로나로 억눌려 있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세계일주여행 중이었을 것이다. 이는 마음뿐이다.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변형 코로나인 Omicron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열었던 나라의 문이 닫히고 있다. 언제 내 몸이 자유로워지러나? 훨훨 날아서 지구를 한두 바귀 돌아야 할텐데… 멀지 않아 코로나가 끝나 내 몸이 자유로워지길 바라고 있다.
저녁밥을 차렸다. 막 먹으려고 할 순간 핸폰이 울렸다. 친구가 나오란다. 한잔하자고. 이 친구는 건축현장에서 미장일을 한다. 하루 일당이 13만원이다. 오늘 월급날, 300만원의 현금을 받는 날이다. 그는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려 내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막일치고 월급이 대단해?"
"어스렁 대충 일해도 시비거는 사람 없어. 밑바닥 일이잖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어쩌면 친구일은 마음이 편해."
본인도 대충 일하고 그만큼 돈을 받는다는 것에 좋아했다. 친구는 청소차를 운전했었다. 1년 전 음주운전으로 특수운전면허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생계가 곤란하여 건설현장 일용인부에 나섰다. 해보니 현장일 벌이가 더 많았다. 밑바닥 노가다 일이다. 그래도 그냥 하루하루 대충 때우면 된다. 이만한 수입이니 그는 괜찮다고 하였다.
우리는 자주 가는 식당에 들렸다. 저녁과 소주를 시켰다. 빈속에 한 잔… 두 잔… 금방 정신이 흐려진다. 말도 많아졌다. 노가다 친구에게 술 얻어먹는 놈이 있다. 바로 나다.
친구는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술도, 밥도, 이야기도… 그리고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사실 초등학교 때 배운 장기를 요즈음 이 친구와 하고 있으니 나도 그가 편한 모양이었다. 어릴 때 배운 장기를 60이 넘어 이제와서 그와 술밥내기 하면서 장기판을 마주 보고 있으니…
그는 자주 나에게 속마음을 들어낸다. 오늘은 뜸없는 말을 했다.
“무얼해도 재미가 없다.”
한잔을 권하니 친구는 이미 전주(집에서 한잔)가 있었다고 했다. 퇴근하여 라꾸라꾸 이동용 침대를 거실에 설치하려하자, “왜 방에 설치하지, 거실이야?”하고
마누라가 잔소리 했다. 그래서 성질이 나서 집에서 소주 반병을 마셨다고 하였다.
나이 60이 넘으면 보통 부부는 각방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는 살갑지 않는 마누라에게 불만이 많다. 그는 오래전부터 거실에서 잔단다.
친구야, 아무리 미워도 거실에서 자고 ,TV 보고, 쉬고… 그렇게 지내면 안방에 있는 마누라는 감옥살이야. 뭐, 남자가 거실에서 안방에 있는 마누라 보초 서는 것도 아니고. 서로 이유가 있어 각방을 쓰면 각자 방에서 생활해야지. 맨날 거실에서 이불 펴 놓고 지내면 안방에 있는 사람은 초조해진다. 여자가 안방에서 나설 때마다 모양 흐트러진 보초를 보는 심정은 어떨까?
아마도 친구가 다른 방에서 홀로 지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거실에서 지내는 것은 괜히 관심을 받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시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소주 두병을 비우고 식당에서 나왔다. 배도 찼고 술기운도 돌았다. 밤이 깊어가면서 겨울바람은 더 찼다. 한잔 술에도 친구는 심심한 모양이었다.
“전통시장 뒷골목에 있는 다방으로 가보자”
우리는 거리를 가로 질려 다방으로 갔다. 전에 한번 가보았던 곳이다. 앉아서 차를 마시는 커피솦이라기보다 주로 커피배달을 하는 곳이다. 요즈음 이런 곳은 외계인들이 경영한다. 중국 동포 말이다. 컴컴한 구석 골목 끝에 다방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큰 홀에는 사람이 없고 카운터에 아주마급 여자가 인사를 한다.
난 중국말을 모른다. 술김에 생각나는 것은 오직 하나…
“니이 하오마”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물어댔다. 아가씨들은 별나라 소리로 대응했다. 공감대가 없으니 말은 허공에 맴돈다. 이왕 왔으니 의미없는 소리라도 해댔다. 술기운인가?
“주인은 중국동포, 아가씨도 역시?”
그렇다고 하였다. 커피를 시키니 4잔이 왔다. 한잔 3000원이다. 애들은 커피 팔아서는 돈이 안된다. 손님 주문에 자기들 마시는 것을 보통 함께 가져온다. 매상을 올리는 것이다. 다 아는 사실… 잠깐이나마 떠들었으니 됐다.
우리는 바로 나왔다. 내실 입구에 여자 신발이 많이 보였다. 이제 저녁 8시이니 아직은 바쁠 시간이 아니다. 밤이 깊어가면 그들은 하나 둘 빠져 나갈 것이다.
옛날 생각이 났다. 부둣가 다방에서 커피향기 날리던 그때는 정말 좋았는데. 낭만이었다.무얼해도 재미가 좋았다. 그때가 좋았다. 한 곡을 썼다.
“가고 없어지는 것은 세월뿐인가 하노라.”
사무실로 돌아 왔다. 장기판을 내었다. 요즈음 가끔 저녁시간에 이 친구와 장기를 한다. 누가 이기나 하다 보면 겨울밤이 깊어간다. 도시와 농촌이 합쳐진 이곳에는 원주민들이 모여 고스톱을 많이 한다.
“할 일 없어 고스톱 치나?” 이렇게 나는 눈빛으로 시비를 걸곧 했다.
친구 말이 맞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투덜댔던 내가 지금 친구와 한잔 술을 하고 장기판을 마주하고 있다. 나도 이제 무얼해도 재미가 없다. 내 삶의 여정도 이런가 보다.
“어참, 장기 두는 사람 어디 갔나?”
내가 떠들었다. 조금 후에는 친구가 같은 말로 큰소리 쳤다.
겨울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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